찌아찌아족이 한글을 輸入한 까닭은?
金昌辰 (草堂大 교양과 교수)
얼마 전 한글을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에게 輸出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일을 요즈음 모든 言論이 한글의 優秀性을 증명하는 事例로 注目하여 크게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일은 그렇게 單純한 일이 아니다. 상당히 複雜한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韓民族이 글자가 없는 민족에게 한글을 輸出하여 문자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은 잘한 일이다. 地球村시대에 우리 한민족이 문화를 통해 人類의 共存共榮을 실천한 일은 바람직하다. 또한 이 일은 한국의 국가 位相도 높여주고 있다. 해외 언론들이 “한글은 한국의 새로운 수출품”이라고 보도하는 것은 그러한 의미가 있다.
한편 찌아찌아족이 이 일로 인해 韓國을 잘 알고 親密感을 느끼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따르는 效果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찌아찌아족 사이에 經濟 協力이 强化되는 일도 附隨的인 효과에 속한다.
무엇보다도 한글 수출은 한글이 優秀한 소리글자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찌아찌아족이 인도네시아 문자도 써봤고 로마자 알파벳도 써봤지만 한글이 자기 민족 말을 가장 잘 적을 수 있는 글자라고 滿足해 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한글 수출은 여러 가지 문제들도 함께 안고 있다.
첫째로, 한글 수출은 文字 交流 역사에서 작은 일에 不過하다. 일찍이 漢字文化圈에서 漢字는 中國, 韓國, 日本, 越南 등지에서 오랫동안 共用으로 써왔다. 한편 로마자도 유럽 전 나라에서 문자로서 共用으로 사용해 오고 있다. 이처럼 文字라는 것은 원래 주인이 따로 없어서 민족간에 주고받고 함께 쓰는 것이다. 한글 수출도 人類의 수많은 문자 교류 역사에서 작은 한 귀퉁이를 차지한 일에 不過하다.
둘째로, 문자 교류는 열린 마음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지난 2천년간 漢字가 없었더라면 韓民族은 文化民族이 될 수 없었다. 漢字는 한민족의 言語를 풍부하게 만들고 文化를 창조하고 歷史를 기록해 왔다. 그런데도 오늘날 한국인은 漢字를 고마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漢字를 몰아내고 한글만 써야 한다는 주장이 우리나라를 휩쓸고 있다. 한자가 우리 민족이 만든 글자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 논리라면 왜 찌아찌아족에게는 그 민족이 만들지 않은 한글을 수출해야 하는가?
우리가 남과 한글을 나누려면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排他的인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韓國人은 지난 2천년간 漢字를 써왔다. 그런데도 한자가 남이 만든 글자라는 이유로 우리 글자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찌아찌아족이 앞으로 한글을 무려 2천년간을 쓰더라도 한글은 끝내 그들의 문자가 될 수 없는 것일까? 그래서 언젠가는 그들이 한글을 다시 몰아내야 할까?
셋째로, 한글은 찌아찌아족이 쓰게 되면 한국의 글자가 아닌 찌아찌아족의 문자가 된다. 訓民正音은 한국어를 적기 위해 만든 글자므로, 한글은 외국어를 적을 때 안 맞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한글을 찌아찌아족의 언어에 정확하게 맞도록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ㅂ 脣輕音을 되살렸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로마자를 共有하지만 각국은 그 나라말에 맞게 약간씩 다르게 손질하여 쓰고 있다.
넷째로, 한글은 컴퓨터를 쓰는 데 不便하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컴퓨터 字板이 인도네시아 문자와 영어 알파벳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찌아찌아족이 컴퓨터로 한글을 쓰려면 별도의 컴퓨터 字板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을 찌아찌아족이 마련할 與件이 안 되므로 우리나라가 支援해야 한다. 게다가 외국에 나가면 컴퓨터에서 아예 한글로 글을 쓸 수조차 없다. 우리 한국인이 겪는 그 不便을 찌아찌아족도 겪게 될 것이다.
다섯째로, 한글은 국제 互換性이 좋지 않아 문자로서 效用性이 낮다. 다른 인도네시아인들은 찌아찌아족이 쓴 한글을 解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찌아찌아족이 다른 인도네시아인들과 글로 疏通하려면 인도네시아 글자를 따로 배워서 그 글자로 적어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찌아찌아족의 한글은 한국인과도 통할 수 없다. 한국인과 찌아찌아족이 한글로 쓴 글을 서로 소리내어 읽을 수는 있어도 뜻은 서로 알 수 없다. 따라서 한글로 쓴 글은 국제적으로 互換性이 부족하여 效用性이 떨어진다. 반면, 로마자(알파벳)는 영어가 國際語로서 通用되기 때문에 영어에 딸린 글자로서 互換性이 좋다. 글자는 말을 적는 수단이므로, 말의 互換性에 글자의 互換性이 左右된다. 따라서 사실 한글만 수출해서는 큰 효과가 없다. 韓國語가 國際語가 되어야 한글이 널리 보급될 수 있다.
여섯째로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쓰는 일은 여러 葛藤의 素地를 안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무슬림 국가들이 韓國 基督敎 宣敎師들의 宣敎 활동에 憂慮를 표시한데 이어 한글 보급 試圖에 대해서도 일부 憂慮를 제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서 뉴욕타임즈는 니콜러스 담멘 韓國 駐在 인도네시아 大使가 “찌아찌아족이 굳이 한글을 수입할 필요는 없으며, 로마자로 표기를 할 수도 있다”면서 바우바우의 다른 부족들이 찌아찌아족에 대한 ‘특별 대우’를 猜忌하고 나설 수 있다며 憂慮를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한글을 異民族이 받아들여 쓰는 일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비록 로마자가 찌아찌아족 말을 적는 데 한글보다 조금 正確性이 떨어진다 할지라도 차라리 普遍的인 로마자를 채택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지난 1990년대에도 우리나라 言語 專門家가 중국 奧地의 라우족에게 한글을 보급했지만 결국은 失敗에 그치고 만 일이 있다.
그럼에도 찌아찌아족이 이번에 한글을 그들의 文字로 採擇한 것은 사실은 한글을 통해 얻을 附隨的인 利益을 期待하기 때문이다. 찌아찌아족은 한글 사용을 통해 아시아 經濟 强國 중 하나인 韓國과 經濟 중심의 交流 强化를 바라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여러 가지 不便을 무릅쓰고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채택한 중요한 原因일 수 있다. 만약에 찌아찌아족이 한국과 경제 교류 등에서 期待했던 만큼 效果를 보지 못한다면, 과거 라우족과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 사실 이번에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수입했다고는 하나 단지 極少數인 수십 명의 학생들에게만 試驗 敎育을 하고 있는 정도다. 겨우 외국인 수십 명에게 한글 가르치는 일을 가지고 너무 호들갑떨 필요는 없다.
한글 수출은 문자 없는 異民族에게는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글을 異民族이 쓰면 그 한글은 그 민족의 글자지 더 이상 한국인의 글자가 아니다. 또 異民族의 한글 사용이 언제까지 持續될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글 수출은 한국인이 애를 쓴 데 비하여 큰 成果를 거두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지나치게 한글 수출에 신경쓰고 매달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오늘날 한국인이 한글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그것은 한글을 가지고 우리 韓國語를 正確히 적도록 하는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 ‘標準發音法’은 母音의 長短音을 구별하여 말해야 標準發音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한글맞춤법’은 그 長短音을 구별하지 않고 적게 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한글은 한국어 발음을 正確히 적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한글로 적힌 글을 보고 읽으면 올바른 발음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한글專用 체제 아래서 오늘날 한국인 중 標準語를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국민 전체가 混亂스러운 非標準 發音을 하고 있다. 이 문제는 매우 深刻하다.
따라서 한글을 標準發音을 적을 수 있도록 改善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時急하다. 한글이 참으로 優秀하다면, 한글로 적힌 글을 읽으면 누구나 정확한 표준발음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한글이 表音能力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世宗大王 때는 그렇지 않았다. 傍點이 있어서 한국어의 高低長短을 정확히 나타냈다. 따라서 世宗大王 당시의 訓民正音을 읽으면 누구나 정확한 標準發音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世宗大王 때의 傍點을 되살려 한글의 表音能力을 訓民正音 때 수준으로 회복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한국인이 정확한 標準發音을 하게 하는 일이 異民族에게 한글을 보급하는 일보다 훨씬 時急하고 重要한 일이다.
우리는 ‘한글날’을 맞아서 이처럼 한글 發展에 도움이 되는 論議를 하여야 한다. 根據도 없는 한글專用이나 讚揚하는 글들을 해마다 되풀이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所用이 있는가? 올해도 답답한 ‘한글날’이 되려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