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語는 陸海空軍을 갖고 있는 方言이다.] 막스 와인라이프
위대하신 한글학자 ?
“그 분은 살아 계시는 世宗大王였습니다.”
2월 1일 저녁 9시 좀 넘어 교육방송. 이 말에 깜짝 놀랬다. 바로 6일前, 1월 26일, 세상을 뜬 한글학회 허웅 회장에 대한 追慕 對談에서 들은 말이다.
한글학회 부회장인 이현복 교수와 國立國語硏究院에 근무 중인 서울대학교의 권재일 교수, 國語敎育硏究會의 백봉자 부회장, 그리고 방송국의 김동건 사회자, 네 분이 진행하고 있던 중 이현복 교수의 말이다.
主로 사회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 10시까지 계속되었다. 故人이 한글학회장을 34년이나 계속하게 된 것은 퍽 異例的인데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任期가 3년인데 임기가 끝날 때마다 선출되었을 뿐이라고 가볍게 넘겼다.
故人이 格式을 가리지 않고 機構 만들기를 좋아하지 안 했으며 끊임없이 실천하며 情이 많은 분이고 강의를 쉽게 하였다는 등의 찬사를 펼쳤다.
“날틀”, “배꽃계집배움집” 등의 용어를 만들었지요? 라는 질문에 대하여 “아 그건 오해입니다. 混用 측에서 꾸며낸 말입니다. 漢字를 다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아주 어려운 漢字만 쓰지 말자는 것입니다. 실제로 中, 高等學校에서 1,800자를 배우게 했습니다. 初等學校에서의 漢字 學習만을 반대했습니다. 인터넷 이용형태로서 보는 바와 같이 漢字使用에 대한 論爭은 끝났습니다. 고인은 또 한국어의 세계화도 추진했지요…. 칭찬이 이어졌다. 기록할 필요가 있을 듯 해서 급히 메모하였다.
또 고인은 외국에 있는 한글교실 교사를 위한 硏修를 적극 시행했고, 한글날을 國慶日이 되게 노력했으며, 여러 著書를 냈고, 우리말 지키기에 큰공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學術院 회원이 안되어 대단히 유감스러우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 분은 살아 계시는 世宗大王였습니다”라고 다시 더 강조하였다.
한글을 위해 한 일이 없는 한글학자
한글학회는 1921년 朝鮮語硏究會부터의 80여년 뿌리에 2萬을 넘는 회원 수를 자랑하며 정부의 보조금을 매년 받고 言語政策을 左右할 정도의 거대한 단체이다. 따라서 34년이나 장악한 회장이 카리스마 적인 능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래서 세종대왕의 권위와 對比하게 된 것인가?
한글학회 회장으로 있은 햇수가 세종대왕의 治世 32년(1418~1450)과 거의 같기는 하지만 앞에서 설명한 실적만으로는 비교하기 어렵다고 본다. 특히 世宗大王은 새 글자를 창조하여 漢字와의 混用을 당연하게 보았고 한국어를 擴充하였으나 이 분은 漢字/漢字語를 排擊하고 한국어 파괴에 沒頭, 正反對 활동을 했지 않는가?
이번 <한글새소식(2004. 2, 378호)>의 추모 특집호에 세종대왕으로부터 연연히 이어져 내려온 學統(?) 자랑이 몇 나와 있다. 그 중 하나에 다음이 있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셨고, 한힌샘 주시경 선생이 한글맞춤법과 현대 국어학의 기틀을 잡으셨고, 외솔 최현배 선생이 현대 국어의 말본을 이룩하셨고, 이를 이어 15세기의 국어와 현대 국어의 학문적 마무리를 지으신 분이 바로 눈뫼 허웅 선생이시다.](최기호, 상명대학교, 사범대학장)
이 주장을 국어 교과서가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세종대왕에 관한 설명이 가득하고 周時經에 대한 칭송이 많다. 崔鉉培에 대해서는 더 많다. 본인이 쓴 긴 문장이 계속 실렸고 이번 “생활 국어(중학 2-2, p.79)”에는 그의 一代記가 실려 있다. 놀랍다.
그런데 한글학자가 한글에는 줄 한 줄, 점 하나도 더하거나 줄이거나 한 것이 없다. 오로지 漢字를 못쓰게 하기에 매달렸다. 訓民正音 창제 후 오늘까지 28자에서 4자(자음 3자, 모음 1자)가 자연히 쓰이지 않아 24자가 된 것을 확인한 것뿐이다.
한국어가 母語이면 한글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한글을 專攻하는 사람이라야 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한글학회는 目標를 모두 달성했으니
한글새소식 誌(월간)의 ‘차례’에는 으레 다음이 나와 있다.
[우리의 주장] 1. 한글만으로 가로 쓰자. 2. 쉽고, 바르고, 고운 말을 가려 쓰자. 3. 글자 생활을 기계로 하자.
이 目標는 이미 다 달성되었다고 생각된다. 거의 모든 국민이 한글만 아는 세대가 되어서 固有語 중심의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목표가 달성되었으므로 學會는 발전적 解體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漢字의 確認射殺을 그만두고 大悟覺醒하여 韓國語의 완전 침몰을 막기 위하여 漢字의 제한된 범위 내의 활용책 등을 추진할 것인지, 주목된다.
착각의 源泉; 腦에 대한 無知
백년 전 開化期에 이 땅에서 한글전용을 부르짖게 된 것은 서구문명에 壓到 당함에 따라 文字만 바꾸면 서구지식을 쉽게 배울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壓勝하여 進駐함으로써 실행할 好機가 왔다고 판단하여 漢字廢止를 정부시책으로서 시행하였다. 당시 中國도 日本도 文字改革의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3국의 基本方向은 로마자 알파벳 문자로 바꾸는 것이었다.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中國과 日本은 文字改革을 곧 중단하였다. 문자만 바꾸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 언어와 문화가 붕괴될 危險이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만 이상하게도 계속 밀어붙였다. 근거는? 한글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글로 덮어야 할 漢字語는 韓國語의 무려 70%, 30만이나 된다. 이렇게 많은 단어를 소리만으로 표현하려니 같은 소리에 수많은 의미의 단어, 同音異義語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本來의 漢字로서 표기해야 수신자가 제대로 분간할 수 있다.
교과서는 이 同音異義語 현상을 어느 언어에서도 있는 것이라며 無視하고 있다. 그러나 數가 많으면 質이 변하는 법이다. 우리 漢字語는 固有語의 3배에 가까운 수다. 이것을 그대로 둔 채로는 언어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중국도 일본도 이 문제가 그 문자개혁을 막은 큰 요소였다고 한다. 우리만이 例外일 수 없다.
글을 왜 읽는가?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고 효과적인 문장을 쓰기 위해서다. 한글전용은 문자 형태의 단순함만 앞세워 腦의 의미 파악기능을 죽이고 있다.
朝鮮語學會가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꾼 것 자체가, 연구의 대상을 언어에서 문자로 바꾼 것 자체가 잘못이다. 일제 강점기라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지만 光復 후 바로 잡아야 했다. 또 한국어의 正書法도 ‘한글’의 맞춤법에서 ‘한국어’로 바꾸어야 했다. “한글큰사전”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言語觀을 국민에게 강제로 심었다.
정부는 잘못된 언어관에 근거하여 失敗를 반대로 成功이라 우긴다. 그리하여 한국어를 공무원의 規制 하에 두는 國語基本法을 제정하려 한다. 전체주의적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사회기반을 허물어뜨려야 進步요 改革이요 發展으로 본 모양이다.
하도 답답하여 국어 교과서를 검토하였다. 학생들의 장래를 책임지려는 자세를 발견하지 못했다. 수많은 强制論理, 非論理, 한글찬양, 공상과 현실의 混在, 얄팍한 속임수 등 이루 形言하기 어려운 표현이 가득하다.
이를테면 “漢字는 없어질 것이다”, “언어는 도구라 단순할수록 좋다”, “국어 교육은 문학 작품의 감상” 등이다. 게다가 “‘금강산 백일장’ 성황리에 마쳐. 아름다운 조국~분단 아픔 느껴(중학 생활 국어 1-2, p.110)”, “언제나 흥성그리는 매대. 북한 직매장(중학 생활국어 3-1, p130)”, “부산 아시안 게임, 북한의 스포츠 용어(중학 생활 국어 2-2, p.79)” 등이다. 고약한 理念敎育의 場이 된 듯하다.
국어교육 전체를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등 영역으로 나누어 배우게 하고 있다. 잘못이다. 읽기, 쓰기, 듣기, 쓰기는 모두 뇌가 하는 것이다. 초보 과정의 국어 교육 및 外國語를 배울 때에는 이러한 기능적 근육적 학습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母語의 본격적 고등 學習에는 非 효율적이다.
한글전용은 이미 머리 속의 언어를 出力(표현)할 때 한글로만 하라는 것이다. 정보의 1단계 入力(인식), 2단계 기억과 처리, 3단계 出力(표현) 중, 1단계와 2단계를 완전히 무시하며, 3단계의 出力을, 漢字語를 못 쓰게 함으로써, 3분의 2를 줄이게 했다. 이러한 엉터리 自滅策을 가르치는 사람이 교육자요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가?
학교학습과 과외학습의 대립이 최대 사회문제의 하나가 되어 있다. 학교교육에 드는 稅金이 국방에 드는 것보다 더 많아진 지 오래다. 그런데도 敎育의 내용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으니 어찌 된 일인가? 敎育放送이 修能試驗 대비 방송을 곧 한다지만 역시 교과서가 중심일 터인데 그 내용이 좋아진다는 展望은 전혀 나오지 않다. 교과서 편찬은 평가를 전혀 받지 않는 聖域인가? 이대로는 모든 교육개혁이 虛事가 될 것이 뻔하다.
우리말은 표현이 끝난 音聲이 아니라 腦 속의 한국어다
백년 전에는 언어(language)라는 개념이 확립되어 있지 안 했다. 말(speech)과 구별하지 못했다. 언어의 本質에 대한 과학적 파악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19세기 후반부터 腦를 중심으로 한 언어의 能力과 活動에 대한 지식이 쌓였고 현대언어학이 세워졌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 사이에는 遺傳的으로는 2% 이하의 차이 밖에 없고 이 차이 중 가장 큰 것이 腦, 또 뇌의 중심은 언어기능으로 판단되었다.
그런데 우리 국어 교과서에는 ‘우리말’, ‘국어’, ‘한국어’, ‘외래어’, ‘한자어’, ‘고유어’, ‘순수 우리말’, ‘언어’, ‘음운’, ‘음소’, ‘말’, ‘문’, ‘문장’ 등 重要 용어가 제멋대로 쓰이고 있다. “우리글 훈민정음(중학 국어, 1-2, p.103)”으로 되어 있다. 어린이 책에서 세종대왕이 신하에게 [우리말을 소리나는 대로 쓸 수 있는 우리글, 한글을 만듭시다.(새삼, p.32)]라 했다고 되어 있다. 국회의원이 [한글이 국어다]라고 단언하며, 교육대학 총장이 [한글이라는 우수한 우리 언어]라고 하는 판이니 일반인의 誤用함은 당연하다 막심할 것이다.
故人이 된 허웅 교수는 仁川空港을 世宗空港으로 부르게 하려고 노력하였다고 한다. 세종이라는 이름은 널리 애호 받고 있다. 國立國語硏究院에서는 世宗計劃이라는 거창한 계획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줄로 안다. 세종이란 이름은 자칫 욕되게 할 수 있다.
오늘의 언어위기가 法보다 주먹으로 강제된 것이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공용문서가 아닌 교과서가 중심이 되어 한글교육을 밀어붙였다. 60년대 말 한글 5개년 계획이 나와서 決定打가 되었다. 終身 대통령이 되려는 야망이 世宗大王과 같은 威光을 기대하고 강행하였다고 한다. 超憲法的 주먹, 또 하나의 쿠데타였다.
이 쿠데타에 의한 잘못된 언어 질서 위에서 책을 통 읽지 않게 되고 지식사회로 가는 길이 막힌 지 30년이 지났다. 하지만 교과서를 비롯한 거의 모든 文書에 여전히 한자어가 가득하니 어찌 된 일인가? 정보발신이 일부 전문가에 모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전문가의 수가 급격하게 줄고 있다. 그리하여 조직적 협동적 의사소통 수준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 단어의 차원이 아니라 論理構造, 意味構造, 思考體系 등의 차원에서 경쟁력이 계속 떨어지고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가장 모법이 되어야 할 교과서와 교육과정, 시험문제 등 언어관련 기관의 표현물이 다 그렇다. 그러니 다른 것이야 더 말할 여지가 없이 낮을 것이다. 漢字語를 못 쓰게 하는 민족적 自滅策을 찬양하는 사람, 1차원적 單純思考에 젖은 교육자, 지도자에게 제발 한국어의 장래를 차분히 검토하고 조속히 시정하기를 간곡하게 바란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바로 세울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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