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異義同音語
1) 80%가 異義同音
고급 개념을 갖는 한자어는 2음절을 원칙으로 한다. 그런데, 3천字가 서로 합하여 60만 單語가 되는 까닭으로, 낱개의 한자의 경우와 같이 한자어는 異義同音語가 많게 될 수 밖에 없다. 例를 들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늘 사용하고 있는 언어로 「전기」, 「수도」가 있는데, 「전기」는 電氣, 前期, 全期, 傳記, 戰機, 戰記 등 15~16개의 「전기」가 있고, 「수도」도 首都, 水道, 水稻, 修道, 受渡, 등 7~8개의 「수도」가 있다. 이와 같이 漢字語는 한 개의 발음이 한 개의 단어에 한정된 것은 전 어휘의 20%가 되지 못하고, 그 80% 이상이 이의동음어로 되어 있다.
한글학회 「큰사전」에는 8만8천여 개의 漢字語가 있는데, 그 가운데 6만8천여字가 異義同音이다. (一國의 국어 대부분이 이의동음이라는 현상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한자어를 사용하는 중국과 일본에도 공통된 현상이다. 또 이와는 반대로, 표음문자를 사용하는 나라에는 없는 일이다.) 그런 까닭으로 한자어는 낱글자의 경우와 같이 그 音만을 표음문자로 표기하면 그 뜻을 모르는 것이 원칙이다. 例를 들면, 「한자」라고 기록된 文字가 있다면 이것만으로는 그것이 무슨 뜻의 말인지 알 수 없다. 하나의 사물의 뜻을 나타내는 文字가 그것 하나만으로는 그 의미의 解得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하나의 「넌센스」다.
한글로 된 한자어의 의미를 解得하는 방도가 오직 하나 있는데, 그것은 하나의 문장으로 되었을 때 그 단어의 前出語(전출어)와 後續語(후속어)의 관계로 미루어, 「이때는 그 뜻일 것이다」라고 추측하는 것이 그것이다.
즉, 『포목가게에 가서 광목 한 자만 떠 오너라』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한 자」라는 뜻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추측이라는 것도 언어 환경에 의하여 解得한다는 원시적 방법에 불과한 것으로서 일방적 판단에 그치는 것이요, 그 發音은 꼭 그 뜻이 아니면 안된다는 과학적 근거는 아무데도 없다. 그러나 한글 문서를 이렇게라도, 즉 경험과 눈치로 判讀(판독)할 수 있는 것은 書簡(서간)이나, 한국산 소설 나부랭이의 下等 문서에 한하는 것이요, 哲學, 藝術(예술), 科學(과학), 醫學(의학), 法學(법학) 등 高等 文書(문서)의 解得은 불가능한 것이다.
일개의 단어를 기록한 문자를 보고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면 그것은 하나의 「聲音」(성음)이요 언어가 아니다. 즉, 그것은 意思(의사)의 전달수단이 될 수 없는 하나의 傀儡(괴뢰)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한자어를 한글로 음기하면 漢字 낱개의 경우와 같이 그것은 「非言語」로 化한다. 漢字語는 漢字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이치가 여기 있다.
2) 「可」는 말이고 「가」는 말이 아니다
이 사실을 다음 實例(실례)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자.
국민학교의 성적통지표에는 행동면과 학과면을 둘로 나누어 그 성적이 기입되어 있다. 첫째, 행동면에 있어서는 제일 우량한 것을 「가」라고 적었고 과학면에서는 제일 불량한 것을 「가」라고 적었다.
첫 번째의 「가」는 「가나다」順位(순위)의 「가」이고 두 번째의 「가」는 「秀優美良可」(수우미양가)의 「가」라고 한다. 한자를 아는 사람은 이 설명을 들으면 『아마 그런 것인가 보다』하고 납득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漢字를 모르는 아동들에게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하나의 수수께끼다.
『같은 물건인데, 위에 있을 때는 제일 좋은 것이 되고, 아래 있을 때는 제일 나쁜 것이 되는 물건이 무엇이냐?』 동일한 지면 위에 「가」字를 똑같이 써놓고 위에 있는 「가」는 제일 좋은 것이고 아래 있는「가」는 제일 나쁜 것이라고 하니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를 아동들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동은 理性이 발달하지 못하여 이와 같이 不合理(불합리)한 사실에 대하여 항의할 줄을 모른다. 그리고, 선생의 말이니까 억지로 아는 것처럼 체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字가 일단 성적표를 떠나면 아동들에게는 완전히 알 수 없는 文字로 化한다. 그래서 「가」라는 어휘는 아동들의 머리 속에 남지 않는다. 이것은 단음절어의 경우이거니와 2음절어의 경우도 이와 같다.
여기 「사전」이라는 말이 있어, 漢字를 모르는 아동이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고 치자. 국어사전에는 「사전」이 辭典, 事前, 史前, 史傳, 私錢, 私田, 寺田, 沙田, 등 14~15개의 「사전」이 있다. 그러면 아동이 이 14~15개의 「사전」 중에 어느 것을 取(취)하고 어느 것을 捨(사)하여야 할 것인가.
그러면 아동이 열심히 공부를 하면, 이 14~15개의 「사전」의 「풀이」를 다 암기할 수 있고 또 14~15개의 「사전」을 경우에 따라서 다 구별하여 해석할 수 있고 또 구별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아동들에게는 「사전」이라는 물건은 「소리」일 뿐이요, 「언어」가 아니다. 그런 까닭으로 머리 속에 「사전」이라는 어휘는 들어가 박힐 수 없다.
3) 「사전」이라는 두 글자
「사전」두 글자를 가지고 좀 더 파헤쳐 보자. 「사전」의 위아래를 바꾸면 「전사」가 된다. 「전사」에는 前史, 前事, 田舍, 傳寫, 戰士, 戰死, 戰史, 殿舍 등 10여개의 「전사」가 있다. 그런 까닭으로 「전사」라는 어휘도 아동들의 머리 속에 들어가 박힐 수 없다.
「사」字 하나는, 事, 仕, 似, 寫, 舍, 史, 司, 四, 寺, 思, 등 1백여개의 「사」字가 있다. 그러면 아동들이 이 많은 단음절어를 「사」하나의 음으로 구별하여 암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또 「사」음이 들어가서 되는 단어는, 私家, 査家, 史家, 四角, 私感, 舍監, 死去, 辭去, 事件, 死境, 斯界, 四季, 社告, 思考, 事故, 社交, 謝過, 史觀, 詐欺, 社旗, 沙器, 死期, 士氣, 史記 등 2천여 단어가 있다. 그러면 이 단어들을 한글로 써 놓으면, 동일하거나 근사한 이 많은 2음절어들을 아동이 구별하여 암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다시 「전」音을 보자. 「전」音의 글자는, 全, 田, 前, 典, 專, 展, 電, 傳, 戰, 轉, 銓 등 1백 50여개의 「전」字가 있고 또 이 「전」字가 들어가서 되는 단어는 電氣, 電機, 戰記, 前期, 全期, 轉機, 戰機, 轉記, 電話, 戰化, 田舍, 田家, 傳家, 轉嫁, 殿閣, 篆刻, 傳喝, 錢渴, 前職, 轉去, 典據, 電擊, 前景, 前古, 戰士, 戰史, 戰死, 前史, 錢穀, 戰功, 前功, 全科, 戰果, 戰科 등 2천5백여 단어가 있다. 그러면, 이 많은 1음절어와 2음절어를 한글로 암기를 하여 놓으면 漢字를 완전히 모르는 아동들이 이것들의 뜻을 구별하여 암기할 수 있고 또 구별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또한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실은, 아동들만 불가능한 것이 아니요, 여하한 天才(천재)도 불가능하다.
이상은 常用漢字 2천字 가운데 다만 두 개의 발음 「사」音과 「전」音을 가진 문자에 대하여 본 것이요, 2천개의 漢字와 8만5천개의 漢字語가 다 이런 방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그래서 아동들은 우리 국어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고등개념을 가진 한자어를 하나도 모르게 된 것이다. 여기서 하나도 모른다는 말은, 사용 빈도가 많은 한자어는 그들이 아는 것처럼 보이고, 또 사용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언어의 개념은 지극히 애매하고 부정확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恐喝(공갈)」과 「거짓뿌렁」, 「夫人(부인)」과 「師母(사모)님」을 같은 말로 알고 있다. 즉 그들은 한자어를 하나도 제대로 알고 있지 않다. 해방 이후의 國民敎育(국민교육)은 한마디로 말하여 「낱말 풀이」교육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국어는 말할 것도 없고 算數, 自然, 社會生活(사회생활) 등 학과목의 전부를 그 내용을 가르치는 것보다도 더 많이 거기에 나오는 단어의 「낱말 풀이」를 가르치는 데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한자가 없는 한자어, 즉 내용이 없는 껍데기, 다시 바꿔 말하면 뜻이 없는 소리만을 가르치고 있으니, 이렇게 백년이 아닌 천년을 배워보아도 단 한 개의 단어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문명어를 모르는 原始人이 되었다.
4) 漢字 제거가 思考力(사고력) 제거
결론은 해방 이후의 한글專用 교육은 한국아동으로부터 言語能力(언어능력)을 제거하였다. 이것이 한국 아동의 思考能力(사고능력) 저하의 근본적이요 절대적 원인이다.
무릇, 인간의 사고활동은 言語를 통하여서만 가능하다. 언어 없이는 思考할 수 없다. 思考活動(사고활동)과 언어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요, 이 양자는 상호작용에 의하여 발달한다. 즉, 사상이 보다 고급하여지면 언어가 보다 고급하여지고, 보다 고급하여진 언어는 또 보다 고급한 思考를 가능케 한다. 이것이 사고능력의 발달법칙이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은 자기의 言語能力밖에는 思考할 수 없다. 한국 아동이 推理力(추리력), 創意力(창의력), 理解力(이해력), 解釋力(해석력), 응용력(應用力), 作文力(작문력), 한 말로 하면 思考能力이 열등하게 된 것은, 그들이 고등한 사고활동에 필요한 文明語彙를 하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를 다시 要(요)하면, 학교교육으로부터의 漢字의 제거는 漢字語의 제거를 결과하였고, 漢字語의 제거는 아동들로부터 言語能力을 제거하였고, 언어능력의 제거는 그들로부터 思考能力을 제거하였다.
아동들로부터 언어능력을 제거하여 놓고, 학부모들은 그들더러 공부만 못한다고 성화를 대는 꼴을 보고 있으면 마치, 性能力(성능력)이 없는 자식더러 아이만 못 낳는다고 안절부절 못하는 어리석은 어버이를 보는 것과도 같은 안타까움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아이 못낳는 원인을 교접 체위가 잘못되어 그러는가, 포옹기술이 부족하여 그러는가, 혹은 그 일에 대한 성의가 없어 그러는가, 하고 온통 딴곳에서만 그 까닭을 찾아 헤매고 있다. 내가 이런 억지 비유를 하는 것도 어리석은 어버이와 미련한 스승의 틈바구니에 끼여 헤어날 길 없는 곤욕을 겪고 있는 이 나라의 어린이들이 하도 불쌍하고 딱하여 그러는 것이다.
國語에 대한 重大한 誤解 - 吳之湖
-韓國兒童의 思考能力 低下現象과 그 原因에 대한 考察- 中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3057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