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09.10.26
[외국어에 중독된 한국-16]
'훈민정음'으로 가능했던 조선의 선진 외국어교육
19세기말 유럽에서는 ‘말 중심’의 외국어교육 개혁 운동이 시작됐다. 말 우선, 연결된 텍스트 사용, 목표어 사용 수업등 세 가지 원칙을 기반으로 하는 유럽의 개혁교수법은 오늘날 서구 외국어교육의 근간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서양의 ‘말 중심’ 외국어교육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조선시대부터 시행하고 있었다. 즉 일제강점기 일본이 파괴하기 전까지 우리의 전통적 외국어교육은 서구보다 수백년 이상 앞섰다는 것이다.
19세기 유럽의 새로운 외국어 교수법에서 강조하는 ‘말 우선 원칙’은 글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말, 그 중에서도 정확한 발음을 터득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따라서 발음을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는 수단이 요구됐고, 이를 위해 전통적 철자 대신 국제음성기호(IPA)를 기반으로 한 발음기호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이 시기의 교수법을 발음기호 교수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태조 2년인 1393년에 설치된 조선의 사역원은 말 우선 원칙을 일찍부터 채택했다. 우리나라 외국어교육은 신라의 왜전(倭典, 진평왕 43년인 621년에 설치), 태봉국의 사대(史臺, 태봉국 원년인 904년에 설치), 고려시대의 통문관(충렬왕 2년인 1276년에 설치) 등을 거치면서 이미 상당한 경험과 자료를 축적했기 때문이다.
특히 세종은 외국어 능력에서 말로 하는 의사소통 능력을 대단히 중요시했다. 정확한 발음을 중시했던 세종은 신숙주와 성삼문 등을 요동에 보내 정확한 중국어 발음을 질정(質正)케 했다. 또 이변과 김하도 요동에 보내 당시 중국어 교재인 『직해소학』을 바로잡게 했고, 오늘날의 발음사전에 해당되는『홍무정운역훈』을 편찬하기도 했다. 모두 정확한 중국어 발음을 교육에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세종 이후에도 이러한 전통은 계속됐다. 사역원과 승문원은 중국어교육을 실시하면서 항상 중국 본토음과의 비교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이를 위해 질정관(質正官) 제도를 운영했다. 『조선왕조실록』 곳곳에서 중국어 발음, 표현, 학습 등과 관련된 질정이 언급되는 게 그 방증이다.
이러한 외국어교육의 핵심에는 15세기 중엽 창제된 훈민정음이 있었다. 훈민정음은 19세기말 유럽의 새로운 외국어교육에서 국제음성기호(IPA)가 수행한 역할 이상을 해냈다.
훈민정음으로 정확한 외국어 발음 표기가 가능해지면서 실제 외국어교육을 위한 발음 표기에 훈민정음이 사용됐다. 『홍무정운역훈』, (번역)『노걸대』, (번역)『박통사』, 『노걸대언해』, 『박통사언해』 등이 그 예이다.
중국어뿐 아니라 몽골어, 일본어, 청어 교재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훈민정음이 발음을 표기해 주었다. 15세기 당시의 조선 상황으로는 훈민정음에 의한 발음 표기야말로 정확한 목표어 발음을 학습자에게 제공하는 혁명적인 일로서, 오늘날 녹음을 통해 외국어 발음을 들려주는 것 이상의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발음기호를 외국어교육에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사용한 것은 우리나라가 유럽보다 400년 이상 앞선 것으로 훈민정음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1894년 시행된 갑오개혁으로 사역원은 폐지됐지만 이러한 조선시대의 외국어교육 전통은 구한말까지 대체로 이어졌다. 1883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영어교육 기관인 동문학, 1886년 개교한 육영공원 모두 기본적으로 영어 원어민 화자에 의한 교육이었고, 그 후의 관립외국어학교에서도 원어민이 교사진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말 중심의 외국어교육, 말을 통한 외국어교육의 전통이 나름대로 유지됐다. 하지만 일본에 의해 관립외국어학교가 폐쇄되고 일본식 외국어교육이 시작되면서, ‘영어 공부 십년에 말 한마디 못 한다’는 불행의 씨앗이 이 땅에 뿌려졌다.
훈민정음은 우리말을 표기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 가장 큰 의의가 있지만, 외국어교육에서 정확한 목표어 발음을 제시하는 발음기호 역할을 해 주었다는 점에도 큰 의의가 있다. 최근 찌아찌아어 표기에 한글을 사용하게 된 것은 훈민정음의 이러한 의의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차제에 한글을 생소한 외국어 발음까지 표기할 수 있는 본격적인 발음기호 체계로 가꾸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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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昌辰)
윗 글은 訓民正音은 世宗大王이 韓國語 및 外國語 發音을 正確히 적고자 '發音記號'로 만들었다는 내용입니다. 世宗大王은 저 위의 記事에도 나와 있지만 당시 韓國語 發音 중 특히 正確한 漢字音을 적어서 국민에게 가르칠 수 있는 '發音記號'를 必要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곧 '訓民正音'입니다.
그래서 그 '發音記號'인 '訓民正音'으로 漢字音도 적었고, 그밖에 몽골어, 여진어, 일본어 들까지도 적었습니다. 訓民正音이 소리글자였기 때문에 이처럼 發音記號로서 有用하게 쓰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훈민정음은 우리말을 표기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 가장 큰 의의가 있"습니다. 訓民正音은 正確한 '發音記號'로서 가장 큰 意味가 있다는 뜻입니다. 글자로서 意味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렇게 불과 40년 전까지만 해도 訓民正音은 漢字에 대해서는 發音記號로밖에 쓰이지 않았습니다. 한글은 漢字語의 意味는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漢字語에 대해서는 '發音記號'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한글專用이 强力히 推進되기 전인 불과 40년 전까지는 한글은 漢字語를 적는 文字가 아니라 '發音記號'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美國人 필립 제이슨의 주장을 받아들여 '한글專用'을 실시함으로써 오늘날에는 漢字語를 文字인 漢字로 적지 않고 '發音記號'인 한글로 적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한글로 적힌 漢字語는 發音만 전달하고 意味는 전달하지 못합니다. 특히 한글로 적힌 漢字語 고유명사는 '暗號'가 되고 맙니다. 世宗大王이 訓民正音을 만든 意圖와 目的을 拒逆하는 아주 잘못된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世宗大王이 訓民正音을 만든 意圖와 目的을 올바르게 繼承하여, 한글은 토박이말만 적고 漢字語는 漢字로 적는 國漢字混用 傳統을 이어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한글은 訓民正音의 意圖대로 韓國語 發音을 正確히 적을 수 있게끔 긴소리에는 長音符를 붙여 적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世宗大王을 진정으로 尊敬하는 길이고, 訓民正音을 올바르게 使用하는 일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