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기호(記號)요, 한자(漢字)는 그림입니다
한글로 가득 채운 문장은 조합기호의 행렬이라 속독이 어렵고 읽는 재미가 덜하지만,
국한혼용문은 글에 그림을 엮어 넣은 것 같아 빠르고 정확하고 즐겁습니다.
사정이 우리와 비슷한 『일본』은 그들이『거나 전용』 아닌『한자 병용』을 고집해 온 덕에,
책 읽기가 쉽고 빨라서 국민의 독서열이 달아오르고 선진국 진입이 촉진되었습니다.
아래에 실린 글을 보시며 한자 실력부족을 느끼시는 분께 쉬운 독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연락 주십시오. 3 단계로 구성된 교재 중에서 선택하신 독본을 매주 두 차례씩 무료로 보내드립니다.
연락주실 곳 국한혼용문보급회 kukhanmoon@korea.com
(본회는 주요 일간지의 시사 논설문을 국한혼용문으로 고쳐 6 년째 매일 한 편씩 공개하고 있습니다.)
원산시민회(www.wonsan.org)국한논설문방 에서는 한자의 기본인 해서체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읽기 공부를 위한 국한혼용 페이지입니다) ---------------------------------
- 오늘은 짧은 글입니다. -
(1923) 阿片戰爭 난이도 = 4급 1,000 자를 초과한 한자 수 (36)
文化史學者들은 흔히 人類 歷史를 陶醉와 中毒의 點綴로 본다. ‘失樂園’의 善惡果부터 始作해 西歐文化史엔 술과 阿片에 醉해 創造的 靈感을 求한 文學·藝術家들이 숱하다. 그래서 啓蒙的 合理主義에 叛旗를 든 19世紀 浪漫主義 時期는 ‘陶醉의 時代’로 通한다. 惡魔派 詩人 보들레르는 ‘人工의 樂園’을 通해 阿片 陶醉를 描寫했었다. 陶醉의 靈感은 浪漫主義 藝術家들을 貫通해 20世紀 前衛的 아방가르드와 只今 大衆文化까지 닿는다. 오죽하면 獨逸 文學評論家 알렉산더 쿠퍼는 그 逸脫과 陶醉를 ‘神의 毒藥’이라 했을까.
文化史家들이 들여다보는 陶醉와 中毒은 ‘自由로운 存在’ 側面의 人間 解放일 것이다. 그럼에도 陶醉와 中毒은 害惡의 그림자 탓에 빛이 바래기 일쑤다. ‘罪의 씨앗’이자 ‘靈魂의 破壞的 逃避’다. ‘宗敎는 人民의 阿片’이라 몰아세웠다는 마르크스의 警戒도 宗敎가 가진 狂氣에 앞서 靈魂墮落과 汚染의 集中浮刻일 것이다. 道德·理性的 逸脫로서의 陶醉, 中毒의 꺼림이다.
陶醉며 中毒과 關聯해 나라끼리 피를 뿌린 世界史의 또렷한 痕迹은 1840年의 그 有名한 ‘阿片戰爭’이다. 阿片貿易을 通해 利潤創出을 노린 英國과, 이에 反撥한 淸나라의 戰爭. 當時 優秀한 옷감 製造術을 가졌던 中國에 對한 英國産 紡織物 攻勢가 如意치 않자 英國이 代案으로 들이민 게 바로 阿片이다. 下層民 사이에 阿片이 廣範圍하게 번져가자 中國은 痲藥商들을 홍콩으로 追放했고, 英國이 貿易港 擴大 名分을 내세워 일으킨 게 阿片戰爭 아닌가. 戰爭에 敗한 淸나라는 홍콩을 英國에 빼앗겼고 지난 1997年에야 돌려받았다.
痲藥을 中國에 密搬入한 英國 男性이 그제 結局 死刑을 當했다. 신장위구르自治區 우루무치에서 헤로인 4㎏을 所持한 嫌疑다. 總理까지 나서 善處를 呼訴하는 6個月間의 救命運動이 無爲로 끝나자 英國이 ‘섬뜩하다.’는 表現까지 써가며 날 선 非難을 퍼붓고 있다. 自國 實定法 措置에 對한 ‘內政干涉’이라 反駁하는 中國 立場도 잘못은 아닐 터. 그래도 中國에서 유럽人이 死刑된 게 58年만이라니 普通 일은 아니다. 阿片戰爭의 險한 記憶이 作用했을까. 陶醉와 中毒의 핏빛 前轍을 또 밟지 않기를.
서울 091231 [씨줄날줄] 金性鎬 論說委員 kimus@seoul.co.kr
(國漢混用文普及會 kukhanmoon@korea.com)
----------------------------- (쓰기 공부를 위한 순 한글 페이지입니다.) ---------------------------
아편전쟁
문화사학자들은 흔히 인류 역사를 도취와 중독의 점철로 본다. ‘실낙원’의 선악과부터 시작해 서구문화사엔 술과 아편에 취해 창조적 영감을 구한 문학·예술가들이 숱하다. 그래서 계몽적 합리주의에 반기를 든 19세기 낭만주의 시기는 ‘도취의 시대’로 통한다. 악마파 시인 보들레르는 ‘인공의 낙원’을 통해 아편 도취를 묘사했었다. 도취의 영감은 낭만주의 예술가들을 관통해 20세기 전위적 아방가르드와 지금 대중문화까지 닿는다. 오죽하면 독일 문학평론가 알렉산더 쿠퍼는 그 일탈과 도취를 ‘신의 독약’이라 했을까.
문화사가들이 들여다보는 도취와 중독은 ‘자유로운 존재’ 측면의 인간 해방일 것이다. 그럼에도 도취와 중독은 해악의 그림자 탓에 빛이 바래기 일쑤다. ‘죄의 씨앗’이자 ‘영혼의 파괴적 도피’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 몰아세웠다는 마르크스의 경계도 종교가 가진 광기에 앞서 영혼타락과 오염의 집중부각일 것이다. 도덕·이성적 일탈로서의 도취, 중독의 꺼림이다.
도취며 중독과 관련해 나라끼리 피를 뿌린 세계사의 또렷한 흔적은 1840년의 그 유명한 ‘아편전쟁’이다. 아편무역을 통해 이윤창출을 노린 영국과, 이에 반발한 청나라의 전쟁. 당시 우수한 옷감 제조술을 가졌던 중국에 대한 영국산 방직물 공세가 여의치 않자 영국이 대안으로 들이민 게 바로 아편이다. 하층민 사이에 아편이 광범위하게 번져가자 중국은 마약상들을 홍콩으로 추방했고, 영국이 무역항 확대 명분을 내세워 일으킨 게 아편전쟁 아닌가. 전쟁에 패한 청나라는 홍콩을 영국에 빼앗겼고 지난 1997년에야 돌려받았다.
마약을 중국에 밀반입한 영국 남성이 그제 결국 사형을 당했다.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에서 헤로인 4㎏을 소지한 혐의다. 총리까지 나서 선처를 호소하는 6개월간의 구명운동이 무위로 끝나자 영국이 ‘섬뜩하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날 선 비난을 퍼붓고 있다. 자국 실정법 조치에 대한 ‘내정간섭’이라 반박하는 중국 입장도 잘못은 아닐 터. 그래도 중국에서 유럽인이 사형된 게 58년만이라니 보통 일은 아니다. 아편전쟁의 험한 기억이 작용했을까. 도취와 중독의 핏빛 전철을 또 밟지 않기를.
서울 091231 [씨줄날줄]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오.탈자가 보이시면 연락주십시오. kukhanmoon@korea.com)
http://blog.daum.net/kukhanmoon/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