逆移民
한글은 기호(記號)요, 한자(漢字)는 그림입니다.
한글로 가득 채운 문장은 조합기호의 행렬이라 속독이 어렵고 읽는 재미가 덜하지만,
국한혼용문은 글에 그림을 엮어 넣은 것 같아 빠르고 정확하고 즐겁습니다.
사정이 우리와 비슷한 『일본』은 그들이『거나 전용』 아닌『한자 병용』을 고집해 온 덕에,
책 읽기가 쉽고 빨라서 국민의 독서열이 달아오르고 선진국 진입이 촉진되었습니다.
아래에 실린 글을 보시며 한자 실력부족을 느끼시는 분께 쉬운 독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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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주실 곳 국한혼용문보급회 kukhanmoon@korea.com
(본회는 주요 일간지의 시사 논설문을 국한혼용문으로 고쳐 6 년째 매일 한 편씩 공개하고 있습니다.)
원산시민회(www.wonsan.org )국한논설문방 에서는 한자의 기본인 해서체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오늘은 짧은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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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逆移民 난이도 = 4급 1,000 자를 초과한 한자 수 (13)
1902年 12月22日 濟物浦港. 男子 56名과 女子 21名, 어린아이 27名 等 104名을 태운 蒸氣船 갤릭號가 힘찬 뱃고동을 울리며 出航했다. 3週 뒤 이들이 到着한 곳은 하와이 오하우섬의 호놀룰루. 우리나라 첫 海外 移民의 歷史다. 하와이 移住는 乙巳保護條約 締結 後 日本이 韓國 政府에 移民中止 壓力을 行使하면서 中斷되지만 다른 地域으로의 移住는 植民地 時代에도 繼續됐다. 1947年 美軍政廳 外務處의 發表에 따르면 當時 外國에 滯留하고 있는 朝鮮人은 191萬 7500名으로 集計됐다.
海外移住가 보다 나은 敎育機會와 일자리를 찾기 위한 方便으로 脚光받으면서 移民者는 解放 以後 持續的으로 늘었다. 外交通商部 集計에 따르면 2009年 現在 在外同胞 數는 全世界 176個國 682萬 2606名에 이른다. 注目할 點은 在外同胞 數가 지난해에 前年 對比 3.15%(22萬 2110名)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海外로 移民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逆移民者가 移民者 數를 넘어선 結果다. 지난해 外交通商部에 永住歸國을 申告한 逆移民者는 前年보다 14.3% 늘어난 4301名에 達했다. 하지만 이는 參考用 數字일 뿐이다. 實際로는 이보다 더 많다고 봐야 한다. 外國 永住權이나 市民權을 抛棄하지 않고 國內에 居住하거나 兩쪽을 오가며 사는 사람, 家族이 外國과 韓國에 나눠져 사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逆移民者들 中에는 1970∼1980年代 이민을 떠났던 移民 1世代들이 老後를 故國에서 보내려고 유턴하는 境遇가 가장 많다. 그 다음은 經濟的인 理由가 大部分이다. 韓國은 國力 伸張으로 機會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機會의 땅’이 되고 있다. 外國에서 工夫를 마치고 國內에서 일자리를 얻어 歸國하는 移民 2世代들이 늘고 있는 理由다.
하지만 逆移民者들 中에는 다시 移民을 떠나는 逆逆移民者들도 相當數라고 한다. 住居費用도 비싸고 敎育費도 비싸다. 子女들은 韓國 敎育시스템에 適應하지 못하고, 家庭不和를 겪는 家庭도 많다. 社會 物情을 잘 몰라 돈을 날리거나 詐欺를 당하는 사람들도 있다. 逆移民의 60 ~70%가 이런저런 理由로 役逆移民을 選擇한다.
主要 移民對象國의 移民要件 强化와 우리 經濟 水準의 持續的인 向上으로 移民 減少와 逆移民 增加勢는 持續될 것이란 展望이 나왔다. 外國生活에서 多樣한 經驗을 쌓고, 世界化 時代에 競爭力을 갖춘 逆移民者들을 社會發展 動力으로 이끌 수 있는 方案을 우리 社會가 함께 苦悶해야 할 것 같다.
서울 100107 [씨줄날줄] 咸惠里 論說委員 lotus@seoul.co.kr
(國漢混用文普及會 kukhanmoon@korea.com)
----------------------------- (쓰기 공부를 위한 순 한글 페이지입니다.) ---------------------------
역이민
1902년 12월22일 제물포항. 남자 56명과 여자 21명, 어린아이 27명 등 104명을 태운 증기선 갤릭호가 힘찬 뱃고동을 울리며 출항했다. 3주 뒤 이들이 도착한 곳은 하와이 오하우섬의 호놀룰루. 우리나라 첫 해외 이민의 역사다. 하와이 이주는 을사보호조약 체결 후 일본이 한국 정부에 이민중지 압력을 행사하면서 중단되지만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는 식민지 시대에도 계속됐다. 1947년 미군정청 외무처의 발표에 따르면 당시 외국에 체류하고 있는 조선인은 191만 7500명으로 집계됐다.
해외이주가 보다 나은 교육기회와 일자리를 찾기 위한 방편으로 각광받으면서 이민자는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늘었다. 외교통상부 집계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재외동포 수는 전세계 176개국 682만 2606명에 이른다. 주목할 점은 재외동포 수가 지난해에 전년 대비 3.15%(22만 2110명)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해외로 이민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역이민자가 이민자 수를 넘어선 결과다. 지난해 외교통상부에 영주귀국을 신고한 역이민자는 전년보다 14.3% 늘어난 4301명에 달했다. 하지만 이는 참고용 숫자일 뿐이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다고 봐야 한다. 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포기하지 않고 국내에 거주하거나 양쪽을 오가며 사는 사람, 가족이 외국과 한국에 나눠져 사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역이민자들 중에는 1970∼1980년대 이민을 떠났던 이민 1세대들이 노후를 고국에서 보내려고 유턴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그 다음은 경제적인 이유가 대부분이다. 한국은 국력 신장으로 기회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 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국내에서 일자리를 얻어 귀국하는 이민 2세대들이 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역이민자들 중에는 다시 이민을 떠나는 역역이민자들도 상당수라고 한다. 주거비용도 비싸고 교육비도 비싸다. 자녀들은 한국 교육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정불화를 겪는 가정도 많다. 사회 물정을 잘 몰라 돈을 날리거나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도 있다. 역이민의 60 ~70%가 이런저런 이유로 역역이민을 선택한다.
주요 이민대상국의 이민요건 강화와 우리 경제 수준의 지속적인 향상으로 이민 감소와 역이민 증가세는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외국생활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세계화 시대에 경쟁력을 갖춘 역이민자들을 사회발전 동력으로 이끌 수 있는 방안을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서울 100107 [씨줄날줄]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오.탈자가 보이시면 연락주십시오. kukhanmoon@korea.com)
http://blog.daum.net/kukhanmoon/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