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非友好化’로 안보와 경제와 남북통일에 무슨 득 되나?
李 長 春(자유평론가 · 前외무부대사)
1991년 동서냉전의 종식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북한의 核개발과 1997년 말에 생긴 소위 IMF-외환위기 및 남한 내의 從北세력 득세로 야기된 한국의 정치혼란 속에서도 韓日관계는 큰 탈 없이 기본적으로 善隣(선린)을 유지해 왔다.
그런 한일관계가 최근에 난데없이 외교적 言路가 막히는 소통불능과 不和로 돌변했다. 한국 대통령 李明博이 2012년 8월 10일 한국영토 獨島를 전격 방문하고 “독도는... 목숨 바쳐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말한 것과 그로부터 나흘 뒤인 8월 14일 “[일본 王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으면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찾아가 진심으로 謝過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 때문이다.
일본 首相 노다(野田佳彦)와 외상 등 각료는 거의 일제히 한국 대통령의 獨島 방문과 ‘日王의 謝過’를 요구한 것에 즉시 반발하며 항의했다. 특히 일본 수상은 8월 17일 한국 대통령 앞으로 유감을 표시한 書翰을 주일대사관 측에 전달한 거의 동시에 그 내용을 공개하는 缺禮를 범했고 일본 외무성은 한국이 일본 수상의 書翰을 일본에 返送하는 과정에서 한국 외교관의 외무성 출입을 막고 接受를 거부하는 식으로 양측의 불장난이 저질러졌다. 이를 따라 일본 외무성은 獨島의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를 요청했고 일본 수상은 “지극히 무례한 [한국 대통령의] 발언이므로 결단코 용인할 수 없다”는 8월 24일자 일본 중의원決議를 가리키며 “[獨島에 대한 주권 확보를 위해] 불퇴전의 決意로 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 대통령이 “독도는... 목숨 바쳐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말한 것과 일본 수상이 “不退轉의 결의로 임하겠다”고 말한 것이 말대로 서로 마주보고 충돌하면 그것은 다름 아닌 戰爭이다. 동네 아이들의 싸움도 侮辱的(모욕적) 언사가 모욕적 逆攻을 부르며 커진다. 국가 간의 전쟁발발 원인제공 행위(casus belli)의 大宗은 先도발(unprovoked challenge)이다. 先도발을 ‘감행했다’와 ‘감행하지 않았다’로 다투다가 급기야 逆도발과 逆襲(counter-challenges/attacks)의 촉발로 무자비한 전쟁이 일어난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가 歷史的으로는 숙적이나 現實的으로는 우방이다. 양국은 1965년의 상호관계 正常化 이래 지난 47년 동안 서로가 약간 티격태격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대체로 무난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兩國이 불행한 過去의 역사를 묻어 놓고 現在와 未來를 지향했던 근 半世紀 동안에 日本은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부상했고 韓國도 괄목할 만한 경제국가로 成功했다. 양국 간의 긴밀한 상호협력이 두 이웃나라의 발전과 번영에 중요한 밑거름으로 기여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오늘날의 선진민주국가(the advanced democracies)는 국가[정부]수준에서는 過去事로 싸우지 않는다. 다만, 민간 수준에서는 얼마든지 역사논쟁을 벌일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의 무대 위에서는 역사를 두고 다투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전혀 안 되거나 덜 발달된 나라 사이에서는 흔히 過去事로 서로 물어뜯고 紛亂을 야기한다. 東北亞細亞가 바로 그런 곳이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처럼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예속되면 그렇지 않다. 그러나 정치적 상호의존관계 아닌 全體主義독재 中國과 準선진민주국가 日本 및 어린民主主義 한국 사이에서 역사戰爭/영토-해양경계-어로紛糾/인권문제 등의 분쟁이 過去事를 등에 업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을 只今(지금)으로서는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나 세 나라가 선진민주국가의 대열에 진입하여 그들 간의 정치적 間隙(간극)이 메워지면 [아마도 향후 100년이 훨씬 지난 후에는] 정치적 분쟁을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해결하는 때가 올 만은 하다.
두말할 것 없이 日本은 동아세아 국제정치에서 역사적 罪人이다. 그러나 일본은 獨逸과는 달리 過去에 진 罪를 후련하게 謝罪하지 않고 있으며 가까운 장래에 그렇게 할 것 같지 않다. ‘神政’의 요소를 탈피하지 못한 日本은 특이한 정치체질(idiosyncracies)을 가진 역사적 국가이다. 그런 日本은 獨逸처럼 못한다. 20세기에 발생한 두 세계대전에서 쓰라린 패배를 경험하며 西方세계의 모범국가가 된 獨逸은 그 정치적 · 사회적 意識구조가 일본과는 대단히 다르다. 그 점은 바로 漢字문화권과 基督敎문화권의 差異이기도 하다.
미국은 - 일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 제2차世界大戰의 일부이었던 東亞/태평양戰爭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묻지 않았다. 일본은 東西冷戰과 6.25전쟁의 와중에 미국의 주도로 체결된 1951.9.8일자의 샌프란시스코講和條約에 따라 상당한 ‘은혜‘를 누렸다. 교전당사국이 아닌 南北韓은 물론 內戰에 휘말린 蔣介石과 毛澤東의 중국은 同 조약의 체결에 참여하지 못했고 또한 美蘇 간의 격돌로 일본의 戰犯책임이 크게 탕감되었다. 그런 歷史야말로 동아세아 국제정치에서 일본에 추궁하는 ’歷史책임‘의 역사적 이유이다.
한국은 美國이 주도한 1945년 이후의 戰後질서 속에서 그런 日本과 1965에 관계정상화 조약을 체결하고 지난 47년 동안 그런 日本과 밀접한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韓半島와 日本列島 간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지난 47년은 [어쩐지 기나긴 和平을 누릴 수 있을 만큼] 예외적으로 ‘행복한 시대’이었다.
2012년의 한국이 그런 ‘행복한 시대’에 종언을 告할 만큼 그런 日本과의 관계에 브레이크를 걸며 경우에 따라 관계동결 내지 관계단절이라도 할 듯이 跛行(파행)을 감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2005년도 盧武鉉의 소위 ‘동북아 균형자’를 동경하며 ‘北方行열차’에 올라타기라도 할 모양이다.
한국 대통령은 그가 독도에 안 갔다면 獨島를 일본에 빼앗길 뻔했는가? 그의 獨島 방문은 歷史的으로는 당연했으나 現實的으로는 不必要했다. 그가 독도에 가나마나 獨島는 한국 땅이다. 그의 괜한 ‘독도訪問쇼‘는 獨島의 紛爭化에 기여하고 일본의 非友好化로 - 잠재적 敵對化로 - 안보와 경제와 남북통일을 위한 한국외교가 고장 나는 것을 아랑곳 않을 언동이다.
한국 대통령은 ‘日王의 謝過’가 - 한일관계에 고장이 나는 것을 무릅쓸 만큼 - 중차대하다고 믿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가 ‘日王의 謝過’를 요구한 것은 歷史的으로는 당연했으나 現實的으로는 不必要했다. 외교는 국가의 威信(dignity)과 체면을 중시한다. 외교는 용언술(an art of representation by words)이다. 괜히 상대방의 금기(taboos)를 건드려 禍를 자초하는 얼간이(fathead) 짓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가 離反하며 서로를 버리면 동북아의 외톨이(the odd man out)가 된다. 약 50년 후에는 역사로 싸우는 ‘時效’가 소멸할 것임을 인식하여 日本은 그 역사의 原罪[특히 性노예]를 사죄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 끝 -
필자 약력: 1940년 경남 마산市에서 출생 ․ 4.19혁명 공로자 ․ 1961년 고등고시 행정과[外交] 합격 ․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대학원 외교학과 수료 ․ 空軍중위 예편 ․ 독일/월남/영국/제네바/뉴욕에서 근무 ․ 外務部 재외국민과장/조약과장/국제기구조약국장/외교정책기획실장 ․ 대통령政務[외교안보]비서관 ․ 駐유엔대표부 차석대표 ․ 駐싱가포르/오스트리아/IAEA/필리핀大使 ․ 外務部大使 ․ 2000년 외교통상부 사직 ․ 경희대학교/명지대학교 초빙교수[독일 Bonn대학교 대학원 修學. 미국 Harvard대학교 CFIA 펠로우. 일본 慶應義塾大學 방문교수] ․ ‘2012혁명’ 저작 · 자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