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敎育을 초등학교에서 할 수 없다"는 [정부 입장]을 6월 13일 조선일보를 통해서 읽었다. 최근 전직 敎育部長官 13명이 連名하여 초등학교에서의 漢字敎育 실시를 정부에 건의한 것과 "살고 싶은 나라 만들기 大討論會"에서 같은 주장을 하게 된 것 등과 관련해서 나온 것이다. 국어의 위기상황을 默殺하고만 있다가 정부가 참으로 드물게 "설명할 책임"을 다 하려는 것이라 생각하고 자세히 검토했다.
그러나 내용은 그저 虛脫하게 할 뿐이다. 터무니 없는 이유를 내세워 국어의 침몰을 가속화 시키는 暴論이 가득하다. 憲法의 國民主權主義와 基本權 保障主義 등 규정과 敎育基本法 등 교육 관련법을 위반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사회 여론을 광범위하게 청취하는 등 신중하게 조사·연구·검토하겠다"는 것이 결론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현실을 歪曲하고 권력을 행사만 하지 책임을 지지 않으며 엉뚱한 주장을 펴 국민을 우롱해도 우리는 그저 처분만 기다려야 하는가? 이 [정부 입장]의 요점을 함께 짚어 보자.
Ⅰ. 虛說이 가득한 정부 설명서
1. 言語교육정책이 아니라 文字교육정책이다?
[정부 입장]은 "현재의 文字교육정책은 한글전용이라는 민족의 이상 실현"이라는 말로서 시작되었다. 文字교육정책? 민족의 理想 실현? 이 두 前提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먼저 한글전용교육의 궁극적인 目的이 한국어의 학습과 활용의 능력을 기르는 데 있으므로 정책의 초점은 문자가 아니라 언어에 두어야 한다. 한글이라는 문자를 교육하는 것은 극히 간단하다. 한국어를 母語로 한 경우면 불과 몇 시간, 길어야 며칠이면 다 된다.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도 어렵지 않게 당장 배울 수 있다.
그러므로 한글을 배우기 위하여 "한글전용"을 해야 할 필요는 처음부터 없었다. 문자교육정책이 논란의 초점이 될 수 없다. 실제로 지난 50여년 한글 자체에 대한 정책적 改善은 하나도 없다.
문제의 초점은 漢字를 배우지 못하게 함으로써 한국어 어휘가 대폭 감축되고 文章이 애매모호하게 구성되고, 사회의 의미전달체계가 일상용어 수준으로 낮아지고 不實化되어서 민족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 데 있다. 즉, 文字가 아니라 言語가 문제인 것이다.
한편 정부는 마땅히 한자와 混用을 할 때보다 한글전용을 하고 보니 훨씬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는 실적을 보여야 한다. 정부는 이제까지 한번도 漢字와 혼용하는 교육보다 한글전용 교육이 우수한 결과를 낳았다는 설명을 한 적이 없다. 겨우 한다는 말이 한글로만 적어도 큰 불편이 없다는 허황된 변명 정도였다.
2. 한글전용은 民族의 理想이다?
다음은 한글전용이 민족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前提를 보자. 무엇을 근거로, 무엇을 목적으로,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정했는가? 참으로 신기한 주장이다. 이 주장이 사실로서 證明이 된다면 한국어의 표기문제 논의 자체가 無意味하게 될 수 있는 중대한 전제다. 이것을 가볍게 宣言해서야 되겠는가?
현재 표음문자를 전용하고 있는 민족들은 전부 그 민족의 이상을 실현하였는가? 그래서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이 같은 물음에 대한 확답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해서 교육의 기본이념이 되고 있는가? 西歐語를 세계 보편인 것으로 알며 민족의 興亡이 문자의 탓이라는 망상을 바닥에 깔고 한국어를 한글로만 표기하면 한국이 서구사회와 닮게 된다고 보았기 때문인가?
西歐語가 인류의 보편이며 이상적인 것일 수 없다. 만약 서구어가 普遍的 언어라면 당연히 한국어 속에 그 보편성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고 또 반대로 서구어 속에 한국어의 보편성이 들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보편성을 확인하지 아니하고는 무엇을 보편이라고 斷定할 수가 없다. 나아가서 무엇을 이상적인 언어라고 확정지을 수도 없다.
그리고 서구어를 보편성을 다 갖춘 이상적인 언어로 보려면 보편성을 확인하는 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작업과 확인이 없는 상태에서 불쑥 한글전용이 민족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언어학은 어느 것이 공통점이고 아닌지를 분간하고 해석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지 않다. 言語가 전적으로 腦의 활동이고 극히 복잡하고 오묘한 것이어서 아직 그 本質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 언어학이 유럽의 학자들 손으로 건설되어서 유럽의 特殊性에 불과한 것이 언어의 共通性이라고 알려지고 있으나 이것을 무조건 信奉해서는 안 된다.
3. 현재의 정책 틀 안에서도 문제가 없다?
세 번째로 주장하는 것이 현재의 정책 틀 안에서 약간의 노력만 가하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역시 국민을 우롱하는 주장이다. 지금 초등학교에서의 漢字敎育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겨우 한다는 것이 1주일에 2시간의 교장 재량시간 중에서 1시간 정도를 漢字敎育으로 돌려 써도 된다는 정도이다. 학습할 문자 수 등 학습지도요령이 제정되어 있지도 않고 공식적인 교재가 있지도 않다.
하도 답답하여 [한국교육학회에서 초등학교 基礎漢字 500자를 선정 보급하려 했으나 한글학회 등 한글전용 단체들이 강력한 반발로 무산되었다(漢文漢字敎育, 2002. 5, p.49)]고 한다. 이 방해는 교육공무원의 默認과 助長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쓰여 있다. [초등학교에서의 漢字敎育은 아동의 興味와 適性, 認知發達을 고려해 수준에 맞는 학습지도가 되도록 교수 학습 방법을 개선하고 교재개발을 다양화하는 등 漢字敎育의 효과가 실질적으로 확보되도록 노력하면 현재의 정책 틀 안에서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그리고 "현재의 틀 안에서 문제가 없게 할 수 있다."? 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 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도 아니다. 국민을 계속 우롱하고 있다. 지금의 중고등학교에서의 漢文(漢字가 아니라)교육이 눈가림에 지나지 않고 우리를 지쳐서 그만 두게 할 것을 기대하고 있는 정도로 엉성하다는 것을 알면서 하는 말이다. 漢字는 국어과 속에서의 실용적 교육이어야 하는 것이지 漢文 속에서 배우게 할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漢字敎育이 어릴 때에 필요한 어휘 학습이라고 한 점도 큰 잘못이다. 그 필요성은 학생들이 장차를 위한 것이다. 지식사회를 헤쳐나감에 필요한 지식을 自立的으로 학습할 수 있는 기초능력을 갖도록 하는 데 있다. 漢字를 통하여 事物에 대한 槪念, 意味, 思考方式 등을 효과적으로 습득케 하는 교육인 것이다.
4. 文字敎育의 現 정책을 一貫性 있게 밀겠다?
또 [문자교육정책에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라고 했다. 즉 현재의 초등학교에서의 '漢字敎育 금지 틀'을 변경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글전용 교육 자체가 原理的으로나 實質的으로나 無理하고 無益한, 잘못된 정책이니 是正할 것을 요구한 데 대한 이유가 단지 종래 해오던 정책이니 그대로 하겠다는 것뿐이니 정말 한심하다. 왜 변경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한 마디도 합리적으로 하지 못하면서 그저 밀겠다니 놀라운 배짱이다.
5. 한글전용과 國漢文混用의 長點을 모두 살리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 이것도 착각이다. 왜냐하면 한글전용과 대응되는 것은 漢字專用이지 國漢文混用이 아니기 때문이다. 國漢文混用은 두 개의 專用을 절충한 것이다.
더욱이 한글전용의 長點과 國漢文混用의 장점을 모두 살리겠다는 생각 또한 원리적으로 있을 수 없다. 문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일반 학생도 이러한 착각을 하지 않을 것을 言語와 文字에 대한 기본 정책을 정하고 민족의 미래를 좌우할만한 막강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이 정도의 낮고 틀린 認識을 하고 있는지 실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6. 漢字敎育은 語彙敎育의 補助手段이다?
초등학교에서의 漢字敎育을 [語彙敎育의 효율적 보조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아니 한국어의 7할이 漢字語이고, 전문학술 용어의 9할이 漢字語인 것을 알고도 이러한 억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漢字語 학습을 한국어의 3할에 미달하는 固有語의 語彙敎育을 보조하기 위해 한다고 하니 정말 어처구니없다.
여기서 또 [초등학교 漢字敎育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데는 해결해야 할 사항이 많다]고 하였다. 이 말은 시행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하더라도 준비해야 할 사항이 많고 이것들이 준비되지 않으면 실시할 수 없다는 條件을 단 것이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 안에 몇 백字를 넣기로 할 것인가를 결정만 하면 되는 것이지 그밖에 큰 장해가 있을리 없다. 그러한 사전준비에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자금 등 資源을 쏟을 생각인가? 마냥 지연시키고 단념하게 하려는 소리로 들린다.
漢字 하나 하나는 문자인 동시에 形과 音 그리고 義(의미)를 함께 나타내는 單語다. 그래서 表語文字라고 부른다. 몇 개가 연결되어 複合語, 句, 文, 文章을 이룬다. 주로 명사와 동사 및 형용사가 되어 한국어의 內容語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고유어(토박이말)는 주로 조사와 조동사 및 접사 등으로서 문법관계를 나타내는 機能語의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그 수에 있어서나 그 역할에 있어서나 漢字가 고유어의 보조수단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 관계는 漢字를 한글로 덮어서 표현한 경우도 변할 수 없다.
7. 앞으로 광범위하게 청취, 신중하게 調査·硏究·檢討하겠다? 50여년이나 시행, 수많은 논란이 이어지고 국어가 破局을 맞이하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이제부터 검토하겠다니 우습다. 하기는 정부의 그 많은 관련 연구기관이 그간 이 중대 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았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부터 시작하여 앞으로 몇 년 동안 신중히 調査·硏究·檢討할 것인가? 관련 공무원의 지금의 지식과 誠意를 가지고는 시간과 자원을 낭비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여론 조사도 잘 될 리가 없다. 이제 거의 모든 국민이 한글세대가 된 상태에서 "현실 追從" 이외 무엇이 나오겠는가? 언어에 대한 상당한 見識과 정열을 가지고 임하지 않는 한 옳은 의견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공장의 생산공정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전체 경제에 관한 이론이 나오기를 기대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아무리 말을 잘한다 하더라도 일반 사람으로부터는 옳은 언어이론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8. 漢字敎育을 하지 않겠다는 文書에 漢字語가 가득하다.
漢字敎育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이 문서에 수많은 漢字語가 한글 표기 밑에 깔려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전체 단어가 대충 170개 정도인데 그 중 약 7할이 漢字語로 추정된다. 이러니 대다수 국민인 한글세대가 어떻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서를 쓰고 결재한 분들은 어디서 어떻게 漢字를 정확하게 공부했으며 앞으로의 當務者들은 이러한 문장을 다룰 수 있는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Ⅱ. 언어에 대한 迷信에서 깨어나야 한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은 한심한 논리가 어째서 핵심 敎育公務員의 무기가 되었으며 교과서가 이에 따라 편찬되고 있는가? 그 要因을 생각해 보았다. 그 중심 要因이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은 언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다. 漢字의 效用性에 대한 검토를 하지 않았다. 서구의 언어이론을 모두 正答인 줄로 믿는다. 언어가 누구나 일상용어로서 잘 쓰고 있는 말이고 노력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므로 특별히 배우지 않고도 지식사회로 갈 수 있다. 韓國語의 문자 표기는 이미 알고 있는 韓國語를 표현하는 것뿐이니 단순한 한글이 좋다. 이렇게 斷定的인 생각을 하고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른 敎科書를 교사들이 열심히 가르치고 있고 대다수 전문가들이 이에 대하여 異意를 제기하지 않고 추종함으로써 사태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언어는 말(음성)이 아니다. 더 넓고 더 복잡한 上位 槪念이다. 물리적인 실체가 아니라 머리 속의 觀念이다. 언어활동의 基本型을 보자. 그 생성과 처리가 전적으로 腦에서 일어난다. 문리적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본인도 자신이 표현한 後가 아니면 모르는 수가 흔하다. 그러니 남이 어떻게 정확하게 알 수 있나. 신체 밖으로 表出된 문자와 음성으로서 짐작하는 데 한계가 있다. 짐작? 그렇다. 문자와 음성에 의미가 붙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送信者는 受信者가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게 송신해야 한다. 언어규범에 맞고 文字(잉크가 지나간 자국)와 音聲(공기의 波長)을 정확하게 발생하여야 한다. 그러면 수신자는 자신의 記憶 속에서 이 문자와 음성과 대응되는 의미를 想起하여 대조하여 확인한다. 이 확인이 理解다. 이렇게 交信의 성패가 수신자의 이해 즉 수신능력에 달려 있다. 쉽게 말해서 수신자가 아는 것만 교신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자 기능의 판단을 송신자의 입장보다도 수신자의 입장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저명한 국어학자 K교수가 [漢字의 未來를 논의하는 국제회의]에 한국을 대표하여 참석하였다. [한국의 문자정책과 漢字敎育]이라는 주제 하에 발표한 끝마무리에서 [한글이 漢字보다 쓰기 쉽고 편리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했다.
과연 옳은 논리인가? 본래 漢字로 되어 있는 漢字語를 많이, 깊이 아는 送信者 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지금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漢字語 지식이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리고 受信者의 입장에서 보면 이 말은 無責任한 말이다. 受信者인 대다수 국민이 본래의 漢字로써 확실하게 배우지 못한 개념을 표현한 漢字語를, 한글로 덮여 있는 漢字語를, 보고서 어떻게 쉽고 편리하게 이해할 수 있는가?
漢字는 문자인 동시에 單語다. 2,000자를 알면 2,000개의 단어를 알 뿐 아니라 이 2,000자를 연결하여 만든 방대한 수의 複合語를, 그 原 뜻을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추정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해 意味喚起力이 뛰어나게 좋은 것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약 5만 이상의 단어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固有語가 몇 단어를 충당할 수 있는가? 固有語만으로 지식경쟁이 가능한가? 고등학교까지의 약 12년간의 國語敎育이 固有語 만이면 전문학력을 어디서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
한글전용 찬양에는 이상 외에 수많은 미신과 착각이 있다. 대개 서구어와 그 이론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는 데서 온 것이다. 이를테면 누구나 문법과 構文능력을 선천적으로 받는다, 고유어는 배우지 않고도 다 안다, 언어는 생각을 전하는 도구다, 孤立語(中國, 泰國, 越南 등)는 膠着語(韓國, 日本, 몽골 등)로 발전하고 다시 屈折語(英語, 印度 등)로 발전하게 되어 있다, 음성만이 언어다, 문자는 象形文字에서 表意文字, 表意文字에서 다시 表音文字로 발전한다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이 교과서에 박혀 있다.
언어학은 全的으로 腦의 활동인 언어를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학문에 비하여 발달이 아주 느리다. 그리고 현재의 서구어와 그 이론은 宗敎와 文化 등 배경이 너무 달라서 참고는 하되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된다.
언어에 대한 교육공무원의 잘못된 믿음이 없어지지 않고 한글전용을 계속 하면 韓文化는 머지 않아 완전히 쉽고, 편리하고, 낮은, 수준의 문화로 固定되고 말 것이다. 韓半島는 漢字文化圈의 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가장 큰 文化遺産이며 효용성이 매우 좋은 漢字를 왜 폐기해야 하는가? 그래서 얻는 이득이 무엇인가? 몇몇 교육공무원의 迷信과 착각에 의하여 言語의 基盤이 끝내 무너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아! 大∼韓民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