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대 - 漢字 이야기
魚允大
高麗大學校 總長 / 本聯合會 指導委員
최근에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휴일에 가족과 함께 忠北 청풍에 있는 문화단지에 봄 소풍을 갔는데 산봉우리의 누각 주위에 ‘令’이라는 글자를 쓴 깃발이 여러 개 펄럭이고 있었다. 어느 TV방송국의 야외 촬영장이 경내에 있는 걸로 보아 歷史物을 촬영하기 위해 세운 깃발로 보였는데 그 깃발 앞에서 어느 젊은 부부가 ‘금’자가 맞다느니 ‘영’자가 맞다느니 하며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동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영자파’와 ‘금자파’로 갈리어 옥신각신하더니 마침내 ‘금자파’의 우세로 사태가 마무리 지더라는 것이었다.
역시 최근에 서울 시내 모 대학 교수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수업시간에 교재에 보이는 “인간의 幸不幸을 점친다”는 구절에서의 ‘幸不幸’을 두고 ‘신불신파’와 ‘행불행파’로 나뉘어져 각각 목소리를 높이는데 마침내 ‘신불신파’가 우세를 점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오래 인기를 누리는 모 라면의 봉지에서 익숙히 보던 글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 교수는 학생들의 漢字 읽기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가끔 新聞 社說을 복사하여 나누어주고 그 안에 쓰인 漢字말을 漢字로 바꾸어서 써 오라는 과제를 내었다 한다. 國語辭典과 漢字字典은 당연히 이용해도 좋고 혹 헷갈리면 부모님이나 형님 누나 선배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좋다고 했다한다. 다 맞는 경우에는 몇 명이 되건 점심을 대접하는데 양식이면 양식, 중식이면 중식을 원하는 대로 사주겠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학생들의 눈빛이 차츰 달라지더니 급기야 환호성까지 지르더라는 것이었다. 결과는 구십여 명의 수강생 가운데 점심대접을 받은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더 기이한 일은 그 社說이 요즘의 懸案인 獨島問題를 다룬 것이어서 獨島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오는데 ‘讀圖’라고 쓴 학생도 여러 명 있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서울 명문대학의 大學院生들이 國漢文混用으로 발표된 論文을 읽지 못해서 리포트 작성에 애로가 많다는 신문 보도가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고, 그 뒤를 이어서 요즘 大學生들의 漢字실력이 거의 엉망 수준임을 알리는 보도가 속출해서 漢字敎育에 문제가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講義室에서 발생했던 위의 사례들이 결코 특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실로 충격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충격적임을 알면서도 根本的인 대책에 대한 考慮가 전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考慮가 없다기보다는 거의 될 대로 되라지 하는 放棄 狀態인 것으로 보인다.
나는 오래 전부터 學生들의 漢字 解讀水準이 얼마나 기막힌 상황에 와 있으며 학습에 있어 얼마나 큰 장애가 되고 있는가를 익히 알고 우려해 왔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現實的 解決策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해 왔다. 그래서 總長에 취임한 후 더욱 더 多方面으로 大學生 漢字敎育의 必要性을 力說하였고 마침내 대부분 교수들의 지지를 얻어 2004학년도 新入生부터 高麗大學校 자체의 漢字理解能力認證制를 실시하게 되었다.
좀 강제적이긴 하지만 재학기간 중 매년 4회씩의 기회를 주고 일정한 점수에 도달하지 않으면 졸업을 보류한다는 구체적 방안도 마련하여 실행에 옮겼다. 일부 학생들이나 일부 교수들의 반대가 당연히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러나 아직껏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나는 現實主義者이자 未來指向的인 사람이다. 過去의 傳統文化가 아무리 가치 있었던 것이라 하더라도 현실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과감히 버려도 좋다는 용감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就任 후 학생들의 英語能力 向上에 큰 역점을 두고 다각도의 구체적 조치를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다. 英語는 이제 英美圈 만의 언어가 아니라 명실 공히 地球村의 公用語이기 때문이다. 그 조치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가능한 한 수업을 英語로 진행하게 한 것이다. 해마다 그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2010년까지는 50%를 高大에서는 英語로 가르치게 될 것이다. 이는 高大에서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데 최대의 變數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실은 나는 한글 전용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相對的으로 우수한 民族이라는 것은 이제 自他가 公認하는 사실이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나랏말씀’에서는 우리의 主體的 獨自性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우리의 思想이나 感情을 外來語를 전혀 배제한 한글만으로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준에 하루 빨리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국어의 완전 한글화에 주력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는 이야기인데 왜 엉뚱하게 漢字를 중시하는가 하는 反問을 받을 수도 있겠다.
나는 그 대답으로 歷史性을 들겠다. 漢字가 韓半島에 전래된 것은 대강 이천년 전이라 한다. 聖君이신 世宗大王께서 民族의 영원한 보물인 한글을 창제한 시기가 15世紀이니 그 이전 천오백년 간은 漢字가 우리의 대표적 언어 표기체계였음이 틀림없다. 新羅 때부터 薛聰이 만든 吏讀가 漢文과 倂用되어 오기는 했으나 역시 漢字를 이용한 것일 뿐이라는 한계를 가진다.
朝鮮 초기에 한글을 제정 반포한 이후에도 漢字는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하여 주요 表記體系로 쓰였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다가 國漢文混用의 시대가 열린 것은 대략 백여 년 전인 甲午更張 이후의 일이고 차츰차츰 日常用語를 한글로 대체해 오다가 일상 문서 등에서 漢字를 거의 폐기하고 한글專用을 시행한 지는 대략 삼십년이 되었다.
그러니까 漢文이 國語로 사용된 기간이 무려 이천여년이나 된다는 結論에 이른다. 한글專用을 공포한 후 삼십 여 년 간 國語學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많은 漢字語가 한글로 대체되었고 지금도 부단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의 경우 法律用語의 한글 대체, 기독교 聖經에 사용된 漢字語의 한글화 등이 눈에 뜨이는 성과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의 國語辭典에는 漢字語가 대략 60~70% 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90%가 漢字語였던 때와 비교하면 상당한 분량을 한글로 바꾼 셈이다. 사실이지 이는 참으로 대단한 成果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바꾸기 쉬운 것을 우선으로 했음 또한 사실이기 때문에 아무리 서둘러도 나머지 60~70%의 漢字語를 한글로 바꾸는 일은 결코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질 사안이 아니다.
거기에는 적어도 백여 년의 세월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그 기간 동안은 國漢文倂用이 최선의 대책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斷食을 했던 몸을 정상 상태로 회복하는 데는 斷食 期間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斷食을 끝냈다고 금방 飮食을 배불리 먹으면 반드시 副作用이 생기고 심한 경우 목숨을 잃게 된다. 그 한 실례로 오랫동안 長江 위를 떠돌며 배를 골렸던 唐나라 詩人 杜甫가 어느 마을에 정박하였을 때 그 고을 원으로 있던 친구가 준 술과 쇠고기 수육을 배불리 먹고 나서 숨을 거둔 일이 있다.
나는 근래의 한글 專用도 이와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사실이지 이천년의 漢字 使用期間을 歷史의 뒤 안으로 돌리고 한글 專用으로 바꾸는 데는 백년이라는 시간도 짧은 것이다. 그런데도 무리하게 한글 專用을 갑자기 推進하다보니 그 결과로 일반 國民들 뿐 아니라 우리 학생들이 漢字文盲이라는 重病에 걸리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이 상황을 극복하는 데는 약간은 强制性을 띠는 한이 있더라도 漢字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 最善의 選擇이 아닐 수 없다. 患者에게 藥을 투여하듯 말이다.
이 사태의 深刻性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敎育 당국은 하루 빨리 적절한 대책을 세우고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우리 大學 入試의 論述考査에서 國漢文混用의 기회를 주고 混用한 경우 약간의 加算點을 주는 방안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물론 우리 대학 구성원들의 共感帶를 형성한 다음에 말이다.
漢字는 비록 人類 文明史에 한 획을 그은 우수한 文字體系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어렵다. 그것을 길게 연결시켜 놓은 漢文은 더 더욱 어렵다. 한글이 “어린 백성”이 쉽게 쓰도록 만든 것과는 반대로 漢字는 원래 中國 古代의 支配層에서만 쓰이던 文字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수월성은 거의 考慮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어려움 때문에 무식한 민중들을 지배하는 수단으로서의 기능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漢字는 民主的이 아니다. 共産政權이 들어선 이후로 어려운 繁體字를 쉬운 簡化字로 고쳐 文盲退治에 크게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文盲率이 세계에서 앞머리를 다투는 現 中國의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簡化字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漢字가 아무리 表意文字로서의 기능을 접고 表音文字를 지향하고 있다하더라도 源泉的인 表意性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漢字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쉽게 익히고 널리 사용할 수 있는 表音文字의 수월성과는 거리가 먼 文字體系일 뿐이다. 그런데도 漢字를 가르치고 한글과 倂用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祖上들의 이천년간의 智慧와 思想이 거의 모두가 漢文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아직도 우리 國語의 根幹이 漢字語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漢字敎育을 다시 推進하지 않으면 안 되는 時點에 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