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전공도 아닌 ‘漢字’에 대해 글을 쓰려하니 꼭 빌려 입은 양복같이 어색하기 그지없고, 어릴 적 동심이 발동하여 살구 서리했다가 주인에게 들켰을 때처럼 부끄럽기 한이 없다. 하지만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평생을 설교하며 사는 목사이기에 말(언어)의 중요성을 실감하며 그리고 우리말의 70%가 漢字語임을 잘 알기에 ‘한자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피력(披瀝)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 漢字가 들어온 이래 지금까지 약 2,000년간 漢字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안녕(安寧)하십니까?」「출근(出勤)하겠습니다.」「점심식사(點心食事)합시다.」와 같은 말들은 거의 매일 사용하거나 듣게 되는 말들이고, 우리나라의 기본법인 헌법의 제1조에도「大韓民國은 民主共和國이다.」라고 되어 있어 漢字가 우리와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1970년 이후에는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漢字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한글전용 교육을 한다고「化石」을「화석」이라는 한글로 가르치면서 그 뜻을 선생님이 일일이 설명해야 하니 그 얼마나 비능률적이고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근자(近者)에 이러한 비교육적 상황을 타개하고 학습 효과를 높이는 한편, 先人들의 슬기와 지혜를 터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 초등학교 선생님과 뜻있는 교장 선생님들께서 자체적으로 한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소식에 얼마나 고무적(鼓舞的)인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동안 ‘한글 사랑’이란 미명하(美名下)에 漢字를 등한시하는 우(愚)를 범(犯)하였고, 영어 열풍(熱風)도 모자라 ‘영어 광풍(狂風)’에 밀려 漢字는 늘 서자(庶子) 취급을 받았고 구시대적 유물로 인식되어 외면당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몰이해(沒理解)에서 비롯된 일시적이 현상일 뿐이요. 더 솔직한 표현은 ‘무식(無識)의 소치(所致)’다.
지면의 제약으로 일일이 설명이 불가하기에 단도직입적(單刀直入的)으로 말하겠다. 소위(所謂) 국어, 영어, 수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漢字를 알아야 한다. 쉽게 말해 공부(工夫)를 잘 하려면 漢字는 필수라는 얘기다. 왜냐하면 漢字를 알면 책을 읽는다든지, 선생님이 말씀(가르침)하실 때 빨리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例)로, 대전의 모(某) 고등학교 2학년 사회과목 시간에 선생님이 “탈세는 범죄 행위”라고 하신 말씀을 대부분의 학생들이 못 알아듣더라는 것이다. 漢字를 알았더라면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을텐데, ‘탈세(脫稅)’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말 한글로 ‘가’라고 써 놓으면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재간이 없지만, 漢字로 쓰면 이렇게 편하고 이해가 쉽다.「家는 집(house,home)이라는 뜻이고, 價는 값(price)을 나타내며, 可는 찬성(yes,right)을, 加는 더하다(add,plus)는 뜻이고, 歌는 노래(song), 街는 거리(street)를, 假는 거짓(falsehood)을 뜻한다.」왜 시어머니를「고(姑)」라고 하는지, 왜「안(安)」을 ‘편안하다’고 하는지, 왜「화(花)」를 ‘꽃’이라 하는지, 왜 나 같은 사람을 하필 ‘목사(牧師)’라 부르는지, 漢字를 모르고서는 그 뜻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차를 타고 가다가 공사하고 있는 도로 주변에 “우회하시오”라는 안내표지판을 보고 대부분 “우측(右側)으로 가라”는 말로 이해하지, “멀리 돌아가라(迂廻)”는 뜻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정운찬 박사(전 서울대 총장)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영어보다 먼저 우리 말을 잘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
말은 사고(思考)의 도구이며 思考가 모여 문화를 만들고, 수준 높은 문화가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요. 국민이 행복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목사는 설교를 하는 사람이고 설교는 성경에 근거한다. 우리말 성경은 대부분 漢字語이고 따라서 목사의 설교 또한 漢字語로 설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목사가 漢字語로 하는 설교를 교인들은 漢字語를 몰라서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다면? 아뿔싸! 기독교신자들이 성경을 읽어도 漢字를 몰라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모른다면??? 논어, 맹자는 물론이거니와 불교의 불경(佛經)을 읽기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漢字는 필수다.
고구마, 감자, 고추가 외국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해서 외국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2,000여 년 동안 우리 조상이 사용하여 온 漢字는 우리 글이다. 뜻을 알고 익힐 경우 그 속에 예(禮)가 있고 지혜가 있고 자연의 이치가 담겨져 있다. 그리고 사고력과 이해력이 향상돼 남을 배려하는 착한 심성도 길러진다. 한자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한자는 동아시아 전체의 공통된 문화유산이며,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맛보기 위해서, 그리고 다가올 ‘중국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우리말의 상당 부분이 漢字語로 되어 있고, 기본적으로 서로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위해서 반드시 한자를 배워야 하고 꼭 필요하다.
漢字는 남의 것이기에 우리가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는 식의 소모적인 논쟁은 이제 부질없는 일이다. 漢字가 들어있는 우리말의 진정한 맛을 알아가면서 漢字를 공부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문화를 배우는 것이며 또한 우리말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