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敎育의 强化方案
高永根
얼마 전 미국 LA에서 있었던 韓日野球 競技의 결과에 대하여 아나운서가 “아쉽게도 일대 영으로 석패하고 말았다”라고 報道하는 것을 보고 한자교육을 强化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석패’는 漢字語로서 ‘惜敗’를 음으로 읽은 것이다. ‘惜敗’는 “경기에서 약간의 점수차로 아쉽게 지다”라는 뜻이다. 이 어휘 안에 ‘아쉽게’란 뜻이 담겨져 있으니 ‘아쉽게도… 지다’와 같은 말은 ‘역전 앞, 철교 다리’와 같은 겹문자이다. 이런 겹문자는 報道文의 原稿를 쓴 사람이 ‘석패’가 그냥 ‘지다’를 뜻하는 줄 알고 저지른 잘못된 예이다. 우리 주위에는 일상 언어생활에서 이런 잘못을 저지르는 일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각급 學校에서 漢字敎育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는 것과 직접 관련이 있다.
우리 民族은 數千年에 걸쳐 漢字와 漢文을 公用하면서 文字生活을 營爲하여 왔다, 한자와 한문을 加工하여 口訣을 만든다든지 吏讀文을 지을 때에도 그 根源은 모두 漢字와 漢文이 그 바탕에 놓여 있었으며 중세에 創製된 한글도 기본적으로 漢字와 混用되는 運命을 타고 났다. 우리나라가 中國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自主國이 된 19世紀末부터 國文, 곧 한글이 公用文字의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국한문혼용으로 방향을 잡아 나갔으며 이점 日帝 强占期에도 큰 차이가 없었다. 解放이 되면서 한글전용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였다. 초중등학교 敎科書를 엮을 때 漢字語는 일단 한글로 내세우되 해당 漢字는 괄호 안에 넣었다. 이렇게 된 배경으로는 첫째는 民族解放이라는 政治·社會的 要因을 들 수 있고 다음으로는 우리말을 적는 데 合理的이라고 公認된 朝鮮語學會(지금의 ‘한글학회)의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영향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점 北韓도 큰 差異가 없었다. 처음은 조선어학회의 맞춤법을 準用하다가 ‘朝鮮語新綴字法’(1948/1950)을 거쳐 ‘조선어철자법’(1954)에 와서 그들 나름의 맞춤법을 완성하여 한글전용의 語文政策을 推進하여 나갔다.
解放된 지 60餘年이 지났다. 우리의 주변에는 漢字를 常用하는 中國과 日本이 있고 21世紀는 東北 아시아가 歷史創造의 主役이 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는 과거 어느때보다도 세 나라의 接觸이 빈번하다. 앞의 아나운서의 보도에도 보다시피 젊은 世代는 한자에 대한 知識을 거의 갖추고 있지 않다. 이는 앞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각급 學校에서 漢字敎育을 실시하지 않은 데 그 직접적 原因이 있다. 19世紀 末 國文이 公用文字의 資格을 얻었을 때 교과서는 國漢文混用을 指向하였다. 이 점 朝鮮語 抹殺政策이 强行되는 1930년대 말까지 變動이 없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解放이 되면서 모든 敎科書는 한글전용으로 편찬되었다. 한자를 괄호 안에 넣음으로써 이전의 主體的인 자리에서 從屬的 자리로 格下시켰다. 常用漢字를 制定하여 한자한문교육을 실시한다고 하였으나 時代가 내려올수록 한자는 우리의 言語生活에서 외면을 당하였다. 특히 지난 世紀 70년대 이후의 政府의 한글전용정책과 90년대 이후의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으로 우리의 文字生活에서 한자는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하였다. 新聞 등의 大衆媒體도 이제는 한자가 거의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로 한글화되었다. 한글만으로 文字生活이 가능해지니 한자에 대한 관심도 줄고 그 교육도 소홀히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앞에서 든 아나운서의 보도와 같은 겹문자적 표현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우리말에는 漢字語 起源의 어휘가 너무나 많다.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어려운 한자어휘는 우리의 固有語로 바꾸어야 한다. 지난 60여년 동안 남쪽은 國語醇化運動에 힙입어서 어려운 한자어휘가 많이 醇化되었고 북쪽 역시 문화어운동의 영향으로 많은 한자어 기원의 어휘가 固有語로 다듬어졌다. 南北이 情報를 교환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을 다듬다 보니 개중에는 意思疏通을 어렵게 하는 말도 적지 않게 태어났다. 北韓語 辭典이 나오게 된 것이 바로 그 사이의 사정을 잘 대변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모든 漢字語를 다 固有語로 되돌릴 수 없다. 특히 高度의 抽象性이 요구되는 哲學用語나 인문사회과학의 學術用語는 고유어로 바꿀 수 없는 것이 많다. 정도는 덜 하지마는 自然科學도 例外가 아니다. ‘理’와 ‘氣’는 오랜 세월에 걸쳐 성리학 용어로 정착되어 있다. 이런 어휘를 어떻게 고유어로 되돌릴 수 있겠는가. 北韓에서도 抽象的인 어휘는 醇化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대신 한자교육을 통하여 바른 사용을 誘導하고 있다. 북한의 한자교과서를 보면 그 실상을 잘 알 수 있다.
나는 모든 한자어를 되살리자는 復古主義者가 아니다. ‘人口에 膾炙되다’란 말은 이미 익은 표현으로서 많이 쓰이기는 하나 ‘膾炙’와 같은 어휘는 그렇게 쉬운 말이 아니다. 이런 말은 그냥 ‘입에 오르내리다’라는 고유어로 얼마든지 대치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한자를 가르치면 고유어의 使用과 發展을 위축시킨다고 하여 한자교육을 반대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生産보다는 受容에 중점을 두는 한자교육은 우리말의 정확한 사용과 발전에 오히려 도움을 준다. 앞에서 든 ‘아쉽게도 석패하고 말았다’도 ‘석패’가 한자어 ‘惜敗’ 를 音讀한 단어라는 알고 있었다면 겹문자적인 표현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國民敎育에서 일정한 수효의 한자를 習得해 놓으면 어려운 한자어휘를 醇化하는 데도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우리말을 정확하게 사용하고 우리말 중심의 어휘체계를 定着시키는 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충실한 한자교육이 傳統文化와의 疏通을 원활하게 하는 基盤造成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누구든지 異議를 제기하지 않는다.
나는 이 자리에서 각급 학교 敎科書를 편찬할 때에는 적어도 漢字 起源의 어휘에 대하여는 한자로 露出하기를 제안한다. 지난 60여년 동안 교과서를 만들 때 한글을 앞세우고 필요할 때에는 괄호 안에 한자를 넣었는데 앞으로는 반대의 순서로 配置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독립협회는 만민공동회라는 큰 규모의 민중 대회를 열었다(『주시경: 마르지 한글
샘』)(한글을 빛낸 자랑스러운 인물 ①), 한글학회-국립국어원,
위의 표현에서 漢字語는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규모’, ‘민중 대회’이다. 이들 네 어휘에 대하여 한자로 露出시키면 다음과 같이 된다.
獨立協會는 萬民共同會라는 큰 規模의 民衆 大會를 열었다
반면, 개별 한자의 音과 새김은 脚註를 이용하는 方案을 제안한다.
내가 제안한 교과서의 漢字露出은 중세의 龍飛御天歌와 杜詩諺解의 漢字露出이나 開化期와 일제 强占期의 漢字露出 방식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차이가 있다면 脚註를 이용하여 음을 달고 그 새김을 달아 주는 것뿐이다. 이 방식은 釋譜詳節과 刊經都監의 佛經諺解의 한자음 달기와 비슷한 면이 있다. 해방 후의 각급 學校 敎科書에서 한글음을 앞세우고 한자를 괄호 안에 넣는 방식은 世宗代의 月印千江之曲의 방식을 결과적으로 繼承한 것이다. 물론 이 방식이 가장 理想的이라고 하겠으나 인제는 漢字文盲이 너무나 많아 이를 退治하는 길은 교과서에서 한자를 露出시켜 한자교육을 强化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의 교과서는 돌아가신 남광우 선생이 1980년대 중반 율촌장학회의 支援을 받아 초등학교용 『韓國語』와 敎師用 指針書를 편찬하여 初等學校에서 한자를 단계적으로 가르치는 模型을 제시한 바 있다. 교과서에 한자를 노출시킨다고 하여 일상 言語生活에서조차 이를 따르라는 것은 아니다. 한자를 괄호 안에 넣는 방식을 택하면 학습자들이 漢字學習을 외면하여 우리말의 정확한 사용을 萎縮시키거나 건전한 발전을 沮害하는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에 窮餘之策이지만 이런 방식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각급 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露出시킨다고 할 때 국어 교과서에 限定할 것인지, 아니면 전 課程에 확대할 것인지에 대하여 論議가 있을 수 있다. 나는 적어도 어떤 교과서든지 한자를 노출시키는 것이 학습의 極大化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단 音을 달거나 새김을 붙이는 일은 국어 교과서에 限定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漢字 露出의 範圍를 ‘漢文敎育用 基礎漢字’를 기준으로 할 것인지 그 이상을 넘어설 것인지도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한자의 導入 時期를 초등학교 1학년부터 잡을 것인지 아니면 중간 학년인 4학년부터 適用할 것인지도 쉽게 결정할 수 없다. 내 생각으로는 初等學校 1학년에서부터 도입하여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영어 조기교육과 관련시킬 때 더욱 그러하다.
敎科書에 한자를 露出시키면 올바른 國語使用과 國語發展을 다그치는 效果만 거두는 것이 아니다. 中國, 韓國, 日本, 그리고 越南, 琉球(현재의 오끼나와)는 전통적으로 한자를 공용하여 왔다. 英祖 때의 실학자 洪大容은 燕行 길에서 筆談을 통하여 얻은 지식과 주고받은 편지를 이용하여 유명한 『乾淨同筆談』을 엮기도 하였거니와 재래로 우리의 학자들이 중국학자들과 交友할 때 필담을 통하여 意思疏通을 한 예는 許多하였다. 실제로 나는 海外旅行에서 한자를 써서 일본학자, 중국학자들과 情報를 交換한 일이 많다. 영어나 독일어가 금방 떠 오르지 않을 때는 한자를 써서 금방 의사소통이 되는 예를 많이 經驗하였다. 앞으로 東北 아시아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接觸할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學問的인 情報交換과 商談을 하는 경우에 意思疏通이 되지 않으면 傳統社會에서와 같이 한자를 써서 이를 補充하는 일이 많아질 것은 분명하다.
開化期 때 일본 漢字統一會 會長 가네코(金子堅太郞)의 글을 번역하여 語文政策의 基調로 삼은 일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가네코는 한자는 中國, 韓國, 日本을 결합시킬 수 있는 좋은 사슬[連鎖]이 될뿐만 아니라 세 나라 사람의 思想을 교환하고 또 貿易을 발달시킴에 있어서 둘도 없는 利益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더욱이 그는 한자를 잘 활용하면 東洋의 文化的 優位性을 宣揚하는 데도 크게 寄與한다고 보았다. 최근 들어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東洋 三國의 漢字標準案도 東北 아시아 文化圈에 賦與된 時代的 要求를 충족시킬 필요성에서 제안된 것이다. 東洋의 한자도 나라에 따라 字體의 變種이 심하니 이를 어떻게 標準化할 수 있겠는가 하고 반대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나 臺灣과 같이 正體字 중심의 교육을 잘 시켜 놓으면 일본의 略字나 중국의 間體字를 익히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이들은 모두 정체자의 變容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동양의 세 나라가 公用할 수 있는 標準字體의 制定으로 이어져야 한다.
각급 학교 교과서에 漢字語 起源의 어휘를 한자로 露出시키는 편찬방식은 올바른 우리말 使用과 發展의 基盤을 쌓음은 물론, 傳統文化와의 斷絶을 막고 東北 아시아 時代에 대비하는 一石三鳥의 效果를 거둘 수 있다. 현재대로 漢字敎育을 외면하거나 소극적으로 실시하면 앞의 ‘석패’와 같이 우리말을 잘못 사용하는 일이 늘어갈 것이고 갈수록 傳統文化와의 斷絶이 깊어질 것이며 머지 않아 우리나라는 東北 아시아의 文化的 孤兒가 될 것이다. 語文政策 立案者의 決斷을 促求해 마지 않는다.(09. 5.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