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의 세종대왕은 한글전용을 개탄할 것』 李東昱
출처 : 月刊朝鮮 1999년12월호
『세종대왕은 한글전용을 위해 한글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한글전용은 漢字란 뿌리를 잘라버린 꽃다발입니다. 우선은 화려하게 보이겠지만 얼마 안가 시들어버리지요. 한글전용은 韓國語를 결정적으로 약화시킬 것입니다』- 李東昱
독일의 「코리아 포럼」
지난 3월6일 오후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꽁지머리를 한 紅顔(홍안)의 독일인을 만났다. 도멜스(Rainer Dormels·43) 박사. 그는 15년 전 우연히 한국말의 매력에 끌려 한국말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한국어 박사가 된 사람이다. 그는 1990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 유학와 4년 뒤 국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시 독일로 돌아간 도멜스 석사는 웬만한 한국사람들도 잘 모르는 조선 세종 때의 「洪武正韻譯訓(홍무정운역훈)」을 연구, 함부르크대학에서 한국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종대왕은 한글전용 반대했을 것』
도멜스 박사에 의하면 세종대왕을 존경해야 하는 이유는 한글 전용의 기회를 만들어 준 점 때문이 아니라 우리 고유 전통과 새 潮流(조류)인 유교적 개혁을 융합시키면서 중국과 다른 나라의 音韻學(음운학)을 참고하여 독자적인 한국적 음운학을 개척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1945년의 해방은 조선조의 개국과 비슷한 점도 있다. 해방 직후 일제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했듯이 조선도 몽골의 지배를 받았던 고려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해방 후 우리는 일제의 잔재청산에 치우친 나머지 한글전용이란 극단적 처방을 택해왔다. 한글이 폐지되고 한자와 일본어만 통용된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을 맞았을 때 세종대왕의 고민과 같은 수준의 고민을 위정자들이 했더라면 한자의 표기가 유효적절한 선에서 한글과 어우러졌을 터이다. 正(정·한자전용)의 시대와 反(반·한글전용)의 시대를 거쳐 우리는 이제야 合(합·漢字倂記)의 시대로 가는 중이다.
도멜스 박사는 『한국에서 한자혼용론자와 한글전용론자 간의 대립을 잘 알고 있다』면서 『그래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부언했다.
―세종대왕은 한글 전용을 바랐던 것이 아닐까요.
『나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 당시 기록된 문헌들을 보아도 한자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세종대왕은 한글 전용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 것이 아닙니다. 세종대왕은 한자를 잘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 분이지 한자를 반대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분들이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데모를 했더군요. 앞 뒤가 안맞는 이야기입니다』
―한자 倂記(병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해야죠. 한국 사회에는 몇 가지 오해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한자를 쓰면 「보수적」이고 순한글을 쓰면 「진보적」이란 오해입니다. 세종대왕 당시 진보적인 조류는 對明事大主義(대명사대주의)였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도 치우치지 않고 명분과 실리를 종합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세종대왕이 살아 계시다면 한글 전용에 반대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언어학의 大家(대가)이기도 했던 세종대왕 스스로가 한글 전용으로 된 책들을 높게 평가할 수 없었을 겁니다. 신낙균 문화관광부 장관이 공문서와 도로표지판부터 한자倂記(병기)를 하도록 결정했다는 데 이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봅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학, 그것도 언어학을 공부하면서 한자를 쓸 수밖에 없는 한국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 사람들은 너무 순수한 것만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독일어도 분석해 보면 여러 언어群(군)으로부터 영향받아 왔고 지금도 불편없이 잘 쓰고 있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못난 민족이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동양문화권이니까 영어가 아닌 중국 글자인 한자를 유용하게 사용한다는 것은 현명한 태도라고 봅니다. 일본이 한자를 그토록 많이 쓰지만 서양에서 비웃지 않습니다. 하지만 함부로 이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외국인으로서 한국 사람들에게 한자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 힘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서양 관광객의 눈으로 보면 한국의 초가집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초가집을 보고 감탄하는 관광객이 아파트에 사는 한국인들을 안타깝게 여긴다고 한국인들이 오해하면 곤란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한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서양의 보통사람들이 볼때 한자는 심오하게 느껴질 겁니다. 그들은 한자를 중국의 소유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중국 문화권에서 사용되는 문자라고 보는 겁니다』
그는 1984년 말부터 독일에서 한국어를 공부해 왔다. 1990년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로 유학와 석사과정을 밟는 과정에서 숱한 「한국어 책」을 읽어야 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 서적을 접할 때 한자혼용된 책과 한글전용으로 된 책 중 어느 쪽이 더 편리할까. 도멜스 박사는 『한글로 된 책은 너무 어렵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글전용은 뿌리 없는 꽃다발…』
『한자가 포함된 책을 읽으면 主題語(주제어)를 금방 찾아낼 수 있어 중요한 부분만 읽어도 쉽게 내용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한글로만 표기된 책은 주제어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문장 하나 하나가 한자를 포함했을 때 의미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데 반해 한글로만 된 책은 빨리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있어요』
―한글 전용론자들은 한자어라도 한글로 표기하면 문맥을 통해 얼마든지 해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복수」라는 단어를 보면, 단어만으로는 「復讐」 「複數」, 「腹水」도 있고 「福壽」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맥 속에서는 이것이 무슨 뜻인지 금방 안다는 겁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이런 주장을 어떻게 보십니까.
『제 어휘력이 부족해서 그렇겠지만, 한글로만 된 책은 同音異義語(동음이의어)가 너무 많아요. 현미경을 통해서 어떤 사물을 관찰할 때 초점이 정확하게 맞질 않아서 뿌옇게 보이는 것과 같아요. 얼마나 답답한지 한국사람은 모를 겁니다. 저같은 외국인은 몇 번씩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고통스러움이 있습니다. 한자가 함께 나오는 책들은 한 번 읽어도 또렷하게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요. 초점이 맞는 현미경으로 보는 것과 같지요』
―그럼에도 지금처럼 한글전용을 계속한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틀림없이 한국어는 약해질 것입니다. 한국어의 70%는 한자입니다. 한자로 표기하지 않으면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글자들입니다. 나도 한글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한글이 아름다워서 한글만 쓴다면 곤란할 겁니다. 말과 글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의식을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꽃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뿌리를 잘라버린 꽃다발은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이기는 해도 며칠 못가서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꽃을 상대방에게 줄 때 뿌리째 준다면 꽃을 받은 사람은 이 꽃을 심어 가꿀 수가 있지요. 한자는 한글의 뿌리이니까, 자르지 않고 서로가 주고 받는다면 한국어는 더욱 아름답게 번성할 것입니다』
―하지만 3천 자나 되는 글자를 배우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잖습니까.
『물론 많이 걸리겠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그 길이 빠른 길입니다. 처음 배울 때는 시간이 걸리지만 배우고 나면 한자가 표기된 책을 읽고 이해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이 얼마나 큽니까.
조급성 때문에 단기적으로 빨리 익힐 수 있는 한글만 배우면 학습하는 과정에서야 시간과 노력이 그만큼 작게 들지요. 하지만 그 후부터 책을 읽을 때마다 두고 두고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한자를 익히면 외국어 학습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독일에도 외국인들이 많아요. 한국 교포와 터키 교포들이 2세를 낳아 기르고 있지요. 독일에서 교사생활을 해 본 경험에 의하면 외국어를 배울 때는 모국어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모국어의 학습능력은 언어능력과 연결되고 나아가 사고의 발달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모국어 학습이 제대로 되지 않은 교포 2세들은 독일어를 배우는 데 더디고 한계가 있어요.
한국 사람들의 경우 한자를 많이 외우면 모국어와 같은 개념으로 언어능력이 발달하고 思考의 확장이 가능해지겠지요. 이런 상태에서 영어나 독일어를 배우면 당연히 쉽게 익힐 수 있습니다』
『한글만큼 재미있는 글자 없어요』
1957년 독일 힌스벡에서 태어난 도멜스 박사는 1987년 쾰른 대학을 졸업(지리학 전공)했다. 학부시절에 함께 공부하던 한국 학생들이 도멜스씨에게 써 보인 한글 이름에 매료되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그때 한글을 보니 일본어처럼 복잡하게 뱅글뱅글 돌아가지 않고 각을 이루면서 확실하게 분리되어 있는 글자들이 참 쉽게 보였지요. 3~4주 만에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漢字도 읽어야 한다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한글은 배우지 않았을 겁니다. 나중에 어쩔 수 없이 한자를 배워야 했는데 하면 할수록 한자 공부도 나름의 맛이 있더군요』
학부를 졸업한 뒤인 1987년 봄에 약 5개월 가량 한국을 방문했다.
『여행이기도 했고, 제 장래를 위한 모색이기도 했어요. 어떻게 계속 한국 지리학을 연구할 수는 없을까. 그게 아니라면 한국 언어를 연구하는 쪽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이런 물음들을 배낭과 함께 짊어지고 한국 땅을 헤매다 돌아갔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공부하게 된 것은 1990년에 한국의 문교부에서 제공한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 봄, 서울대학교 언어연구원에서 한국어 훈련을 거친 뒤 가을학기부터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정식으로 등록한 그는 꼬박 3년 동안 석사과정을 밟았다.
이때 그는 현대 옥편과 조선시대의 옥편에서 표기된 漢字 발음 표기의 차이에 관심을 갖게 되어 석사학위 논문을 「玉編類(옥편류) 한자음 비교연구(1994년)」로 완성했다.
석사학위를 마친 그는 1994년 봄 독일로 귀국해 한국학 박사논문을 쓰기 시작해 1997년에 함부르크대학에서 「홍무정운역훈」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료수집과 연구차 2년간 한국에 머물던 중 외국어 학원 강사 崔誠恩(최성은·29)씨와 결혼해 현재 독일 뒤스부르크에서 살고 있다. 뒤스부르크대학 동아시아 연구소에서 한국경제와 관련한 인터넷 시스템을 구축하며 교수자격 논문을 준비하다 최근에 한국을 방문한 그는 인터뷰를 끝낸 이틀 뒤 사진촬영차 덕수궁에서 기자와 다시 한번 만났다. 세종대왕 동상 아래서 기자와 헤어질 때 그는 이런 말을 남겨 놓았다.
『한글은 音價(음가)가 무척 논리적이어서 쉽게 읽어 갈 수 있지요. 한자는 뜻을 정확히 알 수 있고 보기에도 재미가 있습니다. 두 문자의 장점을 취합한다는 것이 바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 아닐까요』
http://blog.naver.com/bigstar3/50029716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