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씨름은 단판 승부이지만, 한국 씨름은 삼판양승이 원칙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일본이 주최한 세계바둑대회 부사통배(富士通杯 후지츠배)는 단판 승부였다. 삼성화재배는 결승만이 아니라 준결승도 3번기로 둔다. 어제까지만 해도 1억 옥쇄(玉碎)를 부르짖었지만, 막상 천황의 옥음(玉音)을 듣자마자, 무조건 항복한다는 모깃소리를 듣자마자, 일본인은 고위 관리가 솔선수범하여 아내와 딸을 정신(挺身)시켜 천신(天神) 맥아더의 점령군을 위안(慰安)해 주었다.
일본은 어느 나라보다 내전이 치열했던 나라다. 전쟁은 각본에 따라 가짜로 죽고 사는 연극이 아니다. 전쟁에선 죽었으면 죽은 것이고 살았으면 산 것이다. 적군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아군에 의해서도 설령 실수나 오해로 죽었다 해도 죽은 것은 죽은 것이다. 한국보다 통일이 약 천 년 늦었던 일본은 전쟁에 대한 집단 기억이 생생할 수밖에 없다. 쥐뿔도 없는 자가 생존을 갖고 도박하는 일은 일본인에게 있어서 상상의 한계를 벗어난다. 승자의 아량이나 변덕에 목숨이 달려 있으면, 일본인은 본능적으로 승자의 변덕이 아니라 승자의 아량에 목숨을 맡긴다. 집단적 문화 유전자가 즉각 그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상의 방책임을 알려 주면, 일본인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생존 본능을 따른다. 일단 생존한 후에는 묵묵히 실력을 기른다. 상대가 여전히 압도적인 힘을 가졌으면 개처럼 시도 때도 없이 꼬리를 흔들고 말같이 아무 때고 등을 대 주지만, 상대가 종이호랑이 신세로 전락한 순간 이리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호랑이처럼 목소리를 깐다. 표변한다.
일본의 내전을 종식시킨 것은 칼과 창과 활과, 비바람 몰아치는 기병이 아니라 서양에서 들어온 화승총과, 말 탄 무사가 휘두른 칼에 가랑잎처럼 나가떨어지는 비실비실 보병이었다. 1853년 일본은 청천벽력처럼 다가온 저승사자를 보았다. 오늘날 동경만에 멀찍이 버티고 서서, 전국에서 식량을 실어 나르던 배들을 종이배처럼 쫓아내고 100만의 생명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위협하던 서양에서 온 저승사자를 보았다. 산채만한 증기선과 호랑이 아가리같이 거대한 입을 벌리고 하늘을 오연히 쳐다보는 대포를 보았다. 300년 전의 조총을 떠올리고, 일본은 그 다음 해에 바로 항복하고 불철주야 실력을 길렀다. 서양에서 처절하게 배워 군함을 만들고 대포를 만들었다. 공업을 일으켰다. 개혁개방했다. 천지개벽했다. 1894년 불과 한 세대 남짓해서 독사 일본은 여반장으로 아시아의 공룡 청나라를 물리치고 아시아 최강으로 거듭났다.
한국은 평화의 나라다. 1000년 이상 통일국가를 유지한 세계 유일의 나라다. 서기 676년부터 1910년까지 1234년이나 통일국가를 유지했다. 전쟁은 80% 이상이 내전이니까, 한국은 사실상 천 년 이상 전쟁을 모르고 살았다. 일제가 식민사관으로 견강부회한 것과 달리 한국은 삼국통일 후 나말여초(羅末麗初)와 여말선초(麗末鮮初)의 지극히 짧은 기간 외에는 내전이 사라져 이따금, 조선시대는 500년간 기껏 두 번 침략 받은 것 외에는 전쟁을 모르고 살았다. 따라서 한국인은 전쟁을 모른다. 고려말 때보다 더 군인을 업신여긴다. 개돼지보다 못한 김일성에 맞서 말 그대로 수십만을 살린 6.15사변 영웅도 단지 모택동이나 스탈린 밑에서 마르크스 이론을 배운 게 아니라 아시아 유일의 근대 군사학 강국이었던 일본의 사관학교에서 한국인이 가장 취약했던 군사지식을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라며 개돼지 취급한다.
겨우 반세기 전에 어떤 전쟁보다 격렬한 내전을 겪었지만, 귀인의 힘으로 간신히 민족의 원수를 물리쳤지만, 이미 전쟁을 다 잊었다. 국사 교과서는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을 끌어들여 300만을 희생시킨 6.25사변을, 시민이 무기고를 털어 무장항쟁하다가 시민만이 아니라 죄 없이 개죽음한 군경도 다수 희생되었거니와 양측을 다 합해도 200명 가량 희생된 5.18사태보다 작게 다룬다. 6.25사변은, 평화적이기만 하면 적화통일되어도 좋다는 건지 애매모호한 평화통일을 위해 잊어버려야 할 전쟁으로, ‘한국전쟁’이라고 남의 나라 이야기인 양 정체불명 민중사학의 이론에 맞춰 선과 악을 두루뭉술하게 다루고 있다. 이등박문이나 히틀러보다 사악한 두 외세를 끌어들여 기습남침한 자가 공산봉건왕조를 세워 연옥을 넘어 지옥을 만들어, 3대 세습으로 인권을 넘어 생존권을 쥐락펴락하고 있지만, 군수산업 외에는 아무 것도 없지만, 조건 없이 돈을 바치고 조건 없이 악마의 변덕에 국가의 운명을 맡기는 것을 민족화해요 남북평화라고 우기며, 정의와 민주에 대해 독점적 특허권을 주장하는 자들이 부지기수다. 민주의 잣대와 인권의 잣대는 오로지 과거의 일정 시기 한국 정권과 현재 한국의 돌고래와 불법시위자와 징계대상 학생과 구렁바위에만 적용해야지, 절대 휴전선 이북에는 적용하면 안 된다고 길길이 뛰는 자들이 부지기수다.
겉보기에는 한국인은 일제 35년 동안 누구나 친일파처럼 행동했지만, 마음속으로 항복한 사람은 거의 없다. 이완용 같은 자도 독립자금을 대 주었을 정도였으니까! 쥐뿔도 없으면서 일본인을 경멸하고 언젠가는 독립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한국인은 항복을 모르니까! 이건 좋은 측면이다. 오늘날 한국에는 세계적 기업이 많은데,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일본이 성공한 것은 우리도 성공할 수 있다는 오기다. 절대 항복하지 않고 덤비고 또 덤빈다. 두 배 세 배 열심히 일한다. 극일(克日) 프로젝트가 세워졌다 하면 가정도 돌보지 않고 죽자 사자 일한다. 그러다가 실지로 죽는 사람도 있다!
북한의 개혁개방은 김일성왕조가 권력의 칼을 쥐고 있는 한 불가능하다. 왜? 한국인은 실낱같은 가능성만 있어도 항복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1976년 모택동이 죽었을 때, 이미 공산주의식 계획경제는 인류사적 생명을 다했다. 소련의 해체와 동구의 개혁개방은 단지 시간문제였다. 김일성은 어땠는가? 쇄국의 철문을 더 높게 둘러쳤다. 주체사상을 내세워 김일성왕조만이 정통사회주의라고 선전선동했다. 전혀 거래가 없었던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이 아니라 실은 제 코가 석자였던 소련과 중국의 원조가 뚝 끊기면서 300만을 굶겨 죽이면서 오로지 정권 유지와 군사력 강화에만 힘썼다. 조선시대에 소중화(小中華)를 외치며 유교의 교리에 따라 머리카락 자르는 것을 목 잘리는 것보다 중시하며 서양과 일본의 대포와 군함을 정신력 하나로, 대의명분 하나로, 혹시나 조상의 가호로 물리치려고 하면서, 지주의 기득권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조선의 양반과 김일성왕조의 개혁개방 절대반대 명분은 비슷하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도 개혁개방하려는 것이 아니라 개혁개방 반대하기 위한 꼼수로 노예공단과 동물원관광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노무현과 김정일의 대화에서 노무현의 변명에서 드러나듯이 노무현도 그것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한 것이 아님을 잘 알았다.
북한인권에 대한 침묵을 곧 죽어도 민족화해라 강변하는 자들이, 입으로만 민주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 휴전선 이남에서는 인권을 초등학생의 사생활과 돌고래의 자유와 도롱뇽의 생존과 바위의 보전에까지 넓히는 자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할까. 소련군 대위에 맞서 역전의 독립 운동가가 유엔 감시 하에 세운 나라를 인정할까. 군인 출신 대통령들이 얄밉게도, 이론상으로는 절대 그러면 안 되는데, 산업화만이 아니라 실지로는 민주화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을 인정할까. 가까이로는 선거에서 패배한 것을 인정할까. 민심이 그들에게 떠난 것을 인정할까. 자신이 승리하지 않는 한, 그런 자일수록 씨름처럼 선거도 삼 세 번은 연달아 패배해야 마지못해 승복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궁시랑 궁시랑 소리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김씨왕조가 이씨왕조처럼 완전히 망하지 않는 한, 한국의 친북좌파는 인구 5천만 이상에서 세계 7위 선진강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은 날마다 헐뜯고 달마다 약화시키고, 단군할아버지가 선물한 무진장 지하자원을 탐내어 일제(日帝)가 세웠던 세계적 공업국을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시킨 북한은 요상하게 두둔하고 기발하게 강화시키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더불어 생명이 다한 모택동 이론과 김일성 이론을 통째로 복사하듯 표절하여 그것을 평화통일의 반석과 만민평등의 용암으로 확신하며 자신들의 잘못은 꿈에서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1919년 상해에 임시정부가 세워졌을 때, 500년간 목숨보다 중히 여겼던 이씨왕조의 후손을 국가원수로 모시자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시대의 도도한 흐름에 따라 절대 고이 망하지는 않겠지만, 머잖아 귀신 곡하듯 김일성왕조가 망하고 나면, 오늘날 여전히 말과 글을 대부분 장악한 친북좌파들은 입을 싹 닦을 것이다. 씨름으로 말하면 3:0으로, 축구로 말하면 5:0으로 힘 한 번 못 쓰고 지고 나면, 그것도 세 번 다섯 번 연달아 지고 나면, 한국인은 그때야 항복한다. 그 때부터는 사람이 싹 달라진다. 잘못을 인정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배운다. 오대영 감독 히딩크는 어떻게 이런 민족성을 알았는지, 5:0으로 세 번인가 네 번인가 연달아 지게 만들더니, 한국의 월드컵대표팀을 밑바닥부터 뜯어고쳤다. 한국의 선수들은 그때부터 양처럼 순하게 스펀지처럼 선진 기술과 전술을 배웠다.
(2013. 7.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