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알고나 까라!
일베간 글 댓글에서 은근슬쩍 빨면 안된다고 혹은 그냥 재미로 빠는거라고 물타는 종자들이 아직도 보인다.
그놈들 보라고 올린다.
몇차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출처
http://www.ilbe.com/173229304
http://www.ilbe.com/122092131
http://www.ilbe.com/115844127
1. 전국민의 의료보험 확대실시 : 의료보험의 시작은 박정희였지만 전국적으로 확대하여 끝을 본건 전두환 장군.
오늘날 우리가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부분이다. 의사 및 의료기관의 이윤을 포기하고 전국민에게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한 최대 업적이다.
민간정부로는 절대 시행할 엄두도 내지 못할 군사정부였기에 가능한 정책이다. 세계에서 이렇게 의료보험 시스템이 잘 잡힌 나라는 찾기 힘들 거다.
좌좀들은 지금 혜택 누릴 거 다 누리면서 전두환 장군 까기에 바쁘지. 요새 하도 복지 복지 나불대는데 진정한 복지다운 복지는 전두환 장군 때 나왔다.
2. 경제성장과 물가안정 : 경제성장은 보통 박정희의 공으로 돌리고 전두환 장군은 받아먹기만 했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탁월한 경제관료들을 잘 발탁하여 적재적소에 등용하여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였다. 본인은 군인이라 무식한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대신 그들이 능력이 발휘할 수 있도록 최대한 서포트해주었지.
"경제는 자네가 대통령이야."
당시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했던 이 말도 굉장히 유명하지. 이를 통해 박통 말기에 터진 2차 석유파동으로 인한 물가상승을 안정시키고
연평균 7.9%이상의 성장률로 당시 목표인 7.5%를 상회하였고, 이에 따라 1인당 국민총생산(GNP)도 당초의 2,226달러를 넘어서 2,300달러를
달성하게 되었다. 또한 수출의 지속적인 신장과 수입증가율의 감소로 국제수지도 지금까지의 적자가 계속 축소되어 1986년을 고비로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화됨으로써 86년에는 46.2억달러 규모의 흑자를 나타내게 되었으며, 외채도 점차 감소의 추세를 보여 1986년에는 전년에 비하여 23억
달러가 줄어들었다. 말년에는 3저호황으로 국제 경제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
전두환 정부는 물가의 안정과 수출초과, 경상수지 혹자의 성과를 모두 기록하였고 남한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확실히 눌러버렸던 때도 이 때였다.
전국민의 70%가 중산층이라고 여기게 되었으며 이 때의 경제성장이 중산층을 육성해서 오늘날 민주주의의 발전의 거름이 되었지.
3. 역대 최고의 치안률 90%달성 : 이건 거의 삼청교육대 때문인데.... 이건 사실 문제가 많기는 하였지만 그만큼 강력범죄가 없던 것도 사실이다.
최저 범죄율로 당시 전세계의 모범이 되었다. 83년에 장애 아동 이윤상 유괴사건이 일어나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일어났는데 당시 전두환이 대통령
담화문 날린 건 유명하다.
"아이를 살려준다면 너도 살고, 죽인다면 너도 죽는다."
결국 아이는 죽었고 유괴범은 1년 뒤에 잡혔지만, 전두환 장군은 열흘만에 바로 유괴범을 사형시킴. 나주사건 등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나날이
심각해져 가는 가운데 이 일화는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4. 체감상 역대 최저 등록금 : 좌빨들은 대학등록금이 전두환 정부 때부터 올랐다고 한다. 그건 맞다. 근데 등록금 자체는 사실 오르긴 올랐는데 그만큼
경제성장이 훨씬 더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체감상 등록금은 가장 낮았다.
"방학 때마다 서클 친구들과 공사판을 나갔죠. 공사판 잡부로 닥치는 대로 일했어요. 내 등록금 벌어 놓고 혁명운동을 해야 하니 정신없이 바빴죠.(웃음).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일 하면 일당이 5만원이었는데, 반대로 저녁부터 아침까지 일하면 7~8만원을 줘요. 그래서 야간에만 작업했죠. 시청 앞부터 덕수궁 돌담길 앞 케이블 매설공사 주역이 접니다. 그때는 한 학기 등록금이 70만원을 웃돌았는데, 한 열흘 일하면 등록금을 벌었죠.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대학교 등록금은 보통 오른 게 아니에요. 학자금 대출해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닌데…."
-충청남도 도지사 전직노빠 안희정
5.사교육금지 : 이것도 양극단의 평가를 받긴 하지만... 과외금지의 결과 가난한 계층에서 소위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급격하게 높아지게 되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이 땐 가능했던 거지. 물론 숨어서 몰래하긴 했지만, 대놓고 본격적으로 하지 않았으면서 수적으로 확 줄어든 건 사실이다.
그 결과 사회변혁의 욕구가 분출하는 대학분위기가 창조되었고, 많은 데모와 끊임없는 학생운동을 야기하기도 했지.
솔직히 문제가 많은 대통령이었기는 하지만 그만큼 업적도 상당히 많았다...
다만 그의 과실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의 치세에 있던 업적이 민간정부에 비해 훌륭함에도 빛을 보지 못하는 거지.
위에서도 말했듯이 가장 억압을 받고 있던 시절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희망에 찬 시기 였다.
제2 연평해전 영결식 당시 사진. (그당시 대통령이었던 핵대중은 불참)
이래도 빨면 안된다고 물타기 하는 새끼들은 뭐냐?
공과 과를 봤을떄 공이 많기에 빠는거야
니들이 뇌물현을 그냥 재미로 드립치는거라고 물타기 하지? 사람은 좋았다고 물타기 하지? 개새끼들 ㅡㅡ
http://www.ilbe.com/246550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