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 頭 言
文化國粹主義와 拜金文化
學術院會員
趙 淳
I
어떤 나라, 어떤 민족을 莫論하고, 그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文化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나라마다 독특한 文化가 있다. 미국에는 미국의 문화가 있고, 중국에는 중국의 문화가 있으며, 러시아에는 러시아의 문화가 있다. 문화의 質을 비교하여 어떤 문화가 우수하고 우수하지 못하고를 判斷하는 基準은 明確치 않다. 그러나 분명히 우수한 문화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문화도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우수한 문화가 아니고는 훌륭한 나라를 만들어 낼 수 없고, 社會를 발전시킬 수 없다. 우수한 문화가 아니고는 시대의 變遷에 適應할 수도 없고, 知識과 경제의 發展을 지속시킬 수도 없다. 北美大陸에 移住한 영국의 淸敎徒들은 우수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偉大한 나라를 만들어내고, 그 나라는 끝내 세계를 지배하게 됐다. 호주는 150년 전까지만 해도 罪囚들의 나라였지만, 역시 우수한 문화 意識이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단시일 내에 세계 一等國을 만들어냈다. 중국은 그 문화의 힘으로, 세계인구의 四分의 一을 抱擁하는 나라를 유지 발전시키고 있다. 이에 비하여 러시아 ‘帝國’은 共産主義가 망하자, 곧 四分五裂이 됐다. 러시아의 문화가 이 큰 제국을 지탱할 만한 含量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브라질은 國土의 크기와 資源에 있어 미국을 凌駕하지만, 아직도 후진국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문화의 질이 발전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문화의 질은 言語가 가장 잘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어는 곧 러시아의 흙냄새를 풍기고, 독일어는 어딘지 모르게 낭만적이다. 훌륭한 문화는 훌륭한 언어를 만들어낸다. 逆으로 훌륭한 언어 없는 훌륭한 문화란 있을 수 없다.
이를테면 英美의 문화는 영어에 담겨있고, 일본의 문화는 일본어에 담겨있다. 영국이랫자, 그 역사는 우리보다 길 것이 없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엄청나게 훌륭한 나라를 만들고, 우수한 언어와 문화를 創出해냈다. 영어는 라틴어에다가, 독일계, 프랑스계의 말이 가미되어 生成된 언어인데, 한편으로는 雄建하고, 한편으로는 纖細하며, 諧謔과 含蓄이 가득하고 伸縮自在한 훌륭한 언어이다. 나는 최근 Samuel Johnson, Edmund Burke, 등의 18세기 영국 文章家들의 글을 읽었는데, 원래, 동시대이긴 하지만, David Hume 이나 Adam Smith 등, 경제 관련의 책만 보던 나로서는, 이들의 著作에 感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의 문장은 마치 銀盤에 玉을 굴리는 듯한 韻律을 가지고 있어, 옥의 질은 다르나, 蘇東坡나 朴燕巖의 詩文과 同工異曲 이었다. 영국이 세계를 지배한 것은, 단순히 무력이나 경제 때문만은 아니고, 바로 이들이 만들어낸 문화의 所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어도 훌륭한 언어이다. 일본인들은 漢字를 가지고 가나(假名)를 만들고, 한문을 그들의 말에 接合하여 좋은 말을 만들어냈다. 近代化 이후로, 서양의 각국 말을 번역하면서, 일본어는 飛躍的으로 풍부해졌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文學作品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데에는 소홀한 편이지만, 그래도 일본은 노벨 문학상 몇 사람을 輩出했다.
이런 나라들의 말로 된 책을 읽으면서, 순 한글로 된 책을 대할 때, 나는 솔직히 暗澹한 느낌을 뿌리칠 수 없다. 우선 나의 淺學의 소치인지 모르나, 한글만 가지고는 어느 수준 이상의 思考를 표현할 수 없고 앞으로도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말 語彙, 특히 抽象語의 대부분이 漢字로 써야만, 뜻을 제대로 나타낼 수 있는데, 이것을 모른다면, 무슨 수로 수준 높은 사고를 할 수 있으며, 어떻게 수준 높은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영어를 잘 배우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영어를 가지고 우리말을 代替할 수는 없다. 漢字를 전혀 모른다면, 우리의 歷史와 傳統은 누가 保存하며 연구를 할 것인가. 우리는 왜 이런 文化國粹主義의 포로가 되어, 우리에 관한 연구를 스스로 抛棄하고 외국인에게 맡겨야하는가, 세상 어느 나라 치고 歷史를 떠나서 발전할 수 있는가, 우리가 과연 영어를 母國語처럼 할 수 있는가. 영어를 잘 하자면 우선 우리말이 영어처럼 풍부해져야하며, 우리말을 할 줄 알아야 영어를 잘 할 수 있다. 자기의 말이 貧弱한데 어떻게 풍부한 남의 나라의 말을 구사할 수 있는가. 文化國粹主義, 이것은 나라의 발전을 막는 虛妄한 哲學이다.
우리의 사고의 硬直性이 60년대부터 한글 專用의 語文政策을 만들어 냈고, 그것이 다시 우리 문화의 質的 發展을 가로막고 있다. 외국의 물건이라면 分別없이 模倣하는 나라가 유독 자기나라의 역사와 사상을 뒷받침해 온 漢字만은 排斥하니. 이것은 하나의 문화적 精神分裂症이며, 成熟한 문화 의식의 발로가 아니다.
II
一國의 경제발전도 곧 문화의 特質을 반영한다. 이를테면 南美의 경제를 보라, 그 경제는 남미특유의 문화가 만들어냈다. 한국과 臺灣, 다 비슷한 배경을 가진 나라들이지만, 경제발전의 樣相은 엄청나게 다르다. 한국이 大企業을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반해, 대만은 어디까지나 中小企業 위주로 발전했다. 한국의 거시지표는 늘 큰 振幅을 그리면서 搖動해 왔는데 비해, 대만의 그것은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한과 북한의 관계를 중국과 대만의 관계와 비교해 보아도 곧 문화의 차이를 實感할 수 있다.
요즘 우리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 IMF의 危機를 克復했다고 자랑하는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急轉直下, 경제의 양상은 IMF 이전으로 回歸하고 있다. 巨視指標, 이를테면 成長率, 經常收支, 投資 등은 좋은 것 같으나, 그 振幅이 커서 불안정하다. 반면, 微視的으로는 기업의 부실이 여전하여, 利潤率이 매우 낮으며, 負債償還能力에도 개선된 것이 없다. 이에 對處하기 위한 경제정책마저, 기업 못지 않게 부실하여 그 동안에 집행된 構造調整政策은 대부분 所期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정부는 지난 10월부터 제 2차 구조조정작업에 착수하였으나, 만일 이들 정책이 기존의 정책의 延長線上에 있다면, 역시 所期의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경제의 어려움의 本質을 생각해보면, 그것도 역시 우리 문화에 뿌리박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60년대 이후의 開發年代를 거치면서 , 우리는 이른바 經濟第一主義를 標榜하면서, 절대빈곤을 극복하는데 일단 성공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종의 拜金文化가 자리잡혔다. 모든 것이 經濟 實績 爲主로 評價되면서, 정치와 교육이 다 버려지고 말았고, 끝내는 經濟論理조차 忘却되고 말았다.
우리 경제가 이렇게 되고, 국민의 價値觀이 이렇게 혼란스럽게된 것도 拜金文化 때문이다. 內實 없이 虛慾만 부리는 기업, 이벤트식 구조조정으로, IMF의 위기를 극복했다고 誤認한 政府,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어려운 극심한 地域感情 그리고 그 地域感情에 기초를 둔 政黨과 政治 行態, 이런 것을 가지고 어떻게 나라가 順調롭게 발전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볼 때, 작금의 우리 경제의 어려움의 원인은 단순한 經濟 構造의 脆弱에 있다기보다는 그 뿌리는 우리의 健全한 文化意識의 缺如에 있다고 생각된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刷新하는 노력이 없이는 정치는 물론, 경제 발전에도 限界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된다.
나는 결코 漢字를 排斥하기 때문에 경제가 이렇게 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漢字를 쓴다고 해서 당장에 경제가 잘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漢字를 배척하는 문화국수주의를 가지고는 좋은 문화가 創出 될 수 없고, 낮은 수준의 문화를 가지고는 경제 발전에도 限界가 있다는 것을 지적할 따름이다.
III
많은 사람들이 漢字는 어렵다고 한다. 아주 쉬운 한글, 세계에서도 가장 完璧한 한글을 두고 왜 어려운 漢字를 써야 하느냐고 묻는다. 이러한 見解는 모두 문화의식이 얕은 데에서 나온다.
漢字는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사실 아주 배우고 읽기 쉬운 글자가 漢字이다. 어렸을 때부터 常用漢字를 배우면 이것처럼 쉬운 글자는 없다. 일단 배우고 나면, 읽기 쉽고 외우기도 쉽다. 물론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려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설사 漢字나 漢文은 어렵다고 하자, 그러나 어려우니까 배우지 말자고 한다면 이것처럼 淺薄한 생각은 없다. 모든 가치 있는 일은 어렵다. 도대체 어려운 말은 배우지 말자고 하니 좋은 말 치고 쉬운 말이 어디에 있는가. 배우기가 아주 쉽다면 사실 그것은 배울 가치가 거의 없는 것이다.
일찍이 경제학자 J.M. Keynes가 말한 바 있다. 藝術이나 學問, 思想 등은 門戶를 개방하여 外國産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商品은 國産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이 말은 文化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개방정책을 써야 하지만, 국내의 雇傭을 確保하기 위해서는 國産을 애용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현재 우리는 케인즈의 말과는 반대 방향을 가고 있는 것 같다. 상품시장의 개방은 아직 未洽한데 資本市場, 外換市場은 활짝 열었다. 반면, 문화에 관해서는 , 특히 漢字에 관해서는 쓸데없는 敵愾心을 가지고 그 사용을 막고자 온갖 힘을 다 기울이고 있다.
文化國粹主義的인 사고를 가지고 영어인들 제대로 배울 수 있겠는가. 그런 철학을 가지고 어떻게 균형 있는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바른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으며, 역사의식 없이 어떻게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겠는가. 文化國粹主義의 貧弱한 哲學으로 국민의 에너지를 좋은 방향으로 쏟게 할 수는 없다. 좋은 思考도 어렵고, 좋은 책도 나오기 어려우니, 文化는 낮은 水準에서 맴돌지 않을 수 없고, 끝내는 국민은 돈밖에 모르게 된다. 文化國粹主義는 이렇게 拜金主義로 연결된다. 결국 한글 專用을 가지고는 좋은 문화를 만들기는 불가능할 것이며, 좋은 문화를 만들어내지 않고는 一流國은 고사하고 二流國도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