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월인천강지곡을 쓰게 했다고 한글전용론자라면 아래 글을 쓴 최현배, 허웅은 한자혼용론자인가?
세종대왕이 월인천강지곡을 만들게 하고 그 월인천강지곡이 훈민정음 우선표기로 되어 있다고 세종대왕이 한글전용론자라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
<월인천강지곡>은 한글 위주의 표기를 우선해서, 한글을 쓰고 그 밑에 한자를 썼으며 반면에,
<석보상절>은 한자 위주의 표기를 우선해서 한자를 쓰고 그 밑에 한글을 썼으며,
<용비어천가>는 한자와 한글을 혼용하여 표기하여, 한자에 음이 달려 있지 않고, 한자와 한글이 동등하게 쓰였다.
월인천강지곡을 비롯한 위 세가지는 훈민정음을 이용한 표기방식을 시험해 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평가이다.
그런데 세종대왕이 월인천강지곡을 쓰게 했다고 한글전용론자라고?
그렇다면 아래와 같이 줄기차게 한자혼용문을 쓴 최현배와 허웅은 한자혼용론자인가?
박경범소설가가 한글전용된 소설을 썼다고 한글전용론자인가?
내가 이 글을 한글전용으로 썼다고 한글전용론자인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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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8 한글專用論者들의 본래의 모습 (2) -허웅의 글
2009/08/28 한글專用論者들의 본래의 모습 (1) -최현배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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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분석과 이미지를 보라.
훈민정음의 창제의도가 과연 무엇인지 생각이 있는 자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훈민정음의 창제의도는 한자와 정음(한글)의 동시사용에 있다.
따라서 세종대왕은 지금 한글전용론자들의 매국에 속아 저급으로 찌들어가는 후손들을 보고 지하에서 통곡하고 계시는 것이다.
2009/09/06 하하하-世宗大王께서 지하에서 痛歎하시면서 하시는 말씀. -그리고 댓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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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서문을 검토한 창제 의도
:일반 백성들을 문자 생활에 참여시키는데 있었다.
※문헌을 통한 한자와 정음의 병행의 예
․석보상절: 수양대군이 세종28년. 1446년 소헌 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석가의 일대기를 기록 전 25권. 최초의 불교번역, 국어로 쓰인 최초의 산문 작품.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 편찬후 세종이 직접 석가의 공덕을 칭송한 노래(580여 내외 곡). 부처의 공덕이 절대적임.
․용비어천가: 조선왕조 사적 송가. 세종 4대조-6대까지의 왕업, 왕조 보존 훈계. 세종 29년 2월 한문주석을 단 총 10권 편찬
1.용비어천가: 한문원문 10군 5책에 삽입되어 있는 것
※원문이 한자인 이유:․이 어려운 문헌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한문에 능통한 사 람일 것
․조선 건국의 합리화 설득을 위해 간행- 설득대상은 일반 국민이 아닌 지식층
2.월인천강지곡: 훈민정음이 크고, 작은 한자로 토를 담.
3.석보상절: 한자 크고, 작은 정음 토
4.월인석보: 한자, 정음 동시
※대상 독자층에 따라
5.두시언해: 전혀 언문표기가 없다-대상: 지식층
6.금강경삼가해: 세종유언-세조진행-세종출판: 동국정음식 한자 표기
※훈민정음 합자례: 주음 표기 방식 설명-따라서 훈민정음의 창제의도가 한자와 정음의 동시 사용에 있었음을 알 수 있음.
월인천강지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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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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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권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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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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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
![](http://sca.visitseoul.net/file/l_img/antique_books/classical_books02035c.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