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敎育은 초등학교 때부터 해야 한다
金昌辰 / 草堂大 敎養科 敎授.
漢字를 배워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는 해묵은 論爭은 이제는 끝났다. 경제 5단체가 傘下 기업체 入社 志願者에게 漢字試驗을 賦課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제 적어도 大學生들은 한자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經濟界의 그러한 實事求是的 政策은 卓見이다. 그런데 한글학회가 학생들이 漢字를 배우는 것은 찬성하지만 中學校 以前에 하는 것은 反對한다는 주장은 語不成說이다. 말과 글은 初等學校 때까지 基礎를 다 닦기 때문이다. 漢字도 우리말과 글의 一部分이기 때문에 당연히 初等學校 때 배워야 한다.
모든 학습 능력의 바탕이 되는 국어 실력은 初等學校 때 基礎가 놓여진다. 국어 실력의 要諦는 바르게 말하고 정확히 글뜻을 아는 데 있다. 그 중 바르게 말하는 첫걸음은 정확히 발음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정확한 발음은 母音의 長短音을 구별해야 한다. 우리말은 母音의 길이에 따라 낱말뜻이 구별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標準語 規定의 제2부인 “標準 發音法”에서는 제6항에 “母音의 長短을 구별하여 발음하되, 단어의 첫 音節에서만 긴소리가 나타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정해 놓고 있다.
표준말을 해야만 정확한 意思疏通이 가능하므로, 우리는 初等學校에서 표준말을 배운다. 그런데 표준말을 하려면 長短音을 구별해야 하고, 長短音을 구별할 수 있으려면 漢字를 알아야만 한다. 즉 표준말을 하려면 漢字를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보기를 들어보자. “傳記”는 [전기]로 “電氣”는 [전ː기]로 구별된다. 그리고 “京畿”는 [경기], “競技”는 [경ː기], “驚氣”는 [경끼]로 구별된다. 또 射的은 [사적], 私的은 [사쩍], 史蹟은 [사ː적], 史的은 [사ː쩍]으로 구별된다.
이러한 語彙를 長短音을 구별하여 정확히 발음하는 일은 漢字를 배우지 않고서는 不可能하다. 그래서 漢字語는 漢字로 써 놓는 것이 발음과 뜻을 정확히 아는 데 便利하다. 그러나 비록 편의상 한글로 적어 놓더라도 漢字를 배운 사람은 文脈을 통해 그 낱말의 발음과 뜻을 거의 알 수 있다.
하지만 漢字를 배우지 않은 사람은 文脈을 통해서도 한글로 써놓은 낱말의 발음이나 뜻을 거의 알 수가 없다. 한글 專用論者들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强辯하지만, 그것은 詭辯이다. 초등학교 교실의 칠판에 “사적 학습”이라고 씌어 있다고 치자. 이 語句에서 “사적”를 학생이 어떻게 정확히 읽을 수 있을까? 글에서 “사적”의 한자말을 찾으면 열세 가지가 나온다. 漢字를 안 배운 초등학생이 이 같은 한글로 표기된 열세 개 낱말들의 발음과 뜻을 각각 정확히 알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아마도 漢字를 배워서 그 낱말의 소리와 뜻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巫堂처럼 神氣가 있어서 어떤 낱말을 보는 순간 靈感이 떠올라서 알 수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漢字를 안 배워도 한자말을 읽고 理解하는 데 아무 支障이 없다는 주장은 국민을 모두 선무당으로 만들자는 수작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放送人들 가운데는 放送의 기본 用語들조차 틀리게 발음하는 사람들이 太半이다. 그들은 “放送”을 [방송]으로, “報道”를 [보도]로, “取材”를 [취재]로, “視聽”을 [시청]으로 모두 긴소리를 짧게만 소리내고 있다.
長短音을 구별 못하는 이런 발음 現象은 放送人들이 정확한 발음을 배우지 못했고 漢字 實力이 없는 데 그 原因이 있지 않을까. 이 모든 것의 근원은 잘못된 國語 敎育에 있다. 國語 敎科書가 發音 敎育을 소홀히 다루었고, 敎師들도 정확한 발음을 가르치지 않았다. 아니 大部分의 敎師들 스스로도 표준 발음을 모르고 있다. 그 가장 根底에는 한글 專用政策이 있다. 한글 專用 30년은 放送人과 敎師마저 국어 발음을 정확히 구사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것은 잘못된 국어 교육 정책이 낳은 안타까운 결과이다.
한글 專用이 지난 30년 간 우리 국민에게 不正確한 발음과 不明確한 낱말뜻을 强要하여 왔음은 悲劇이다. 언어는 인간의 思考에 영향을 끼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각종 人災性 事故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不實한 國語 敎育에 말미암은 “적당主義”에 原因이 있다. 한글 專用論者들은 한글이 빨리 읽기에 좋으나 漢字는 더디기에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그 “빨리주의”가 “不實 共和國”의 原因이 되었음을 그들은 모르는가? 발음도 뜻도 不正確하면서 그저 글을 빨리만 읽으면 좋다는 그런 思考方式에서는 精巧한 高級 文化가 피어날 수 없다.
우리나라가 先進國 문턱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適當主義에 있다. 그 適當主義의 근본은 정확히 말하지 못하고 뜻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적당히 意思疏通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글 專用 政策이 뿌리인 것이다.
잘못된 한글 專用 實驗은 지난 30년 간으로 充分하다. 이제 학생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不正確한 우리말을 배우는 悲劇은 끝내야 한다. 이제 放送人이 우리말을 汚染시키는 데 앞장서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더 以上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 國語 敎育者가 經濟人보다도 國語에 대해 識見이 뒤지는 부끄러운 일도 더더욱 없어져야 한다. 도대체 우리 國語 敎育은 얼마나 더 많은 試行錯誤를 겪고 얼마나 더 많은 犧牲을 치러야만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