抱腹絶倒(포복절도)할 한글專用(전용)의 現場(현장) (3)- 柳寬順(유관순) 烈士(열사)는 會社(회사) 親舊(친구)?
국한문을 혼용한 갈색 표지판이 생긴 연유를 알아보고자 충북도청 관광과
에 문의를 해보았다.
"최근 우리나라를 찾는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의 관광객들이 가장 불편을
느끼는 것은 도로 표지판과 관광안내 표지판이 모두 한글과 영어로만 되어
있는 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문화관광부에서 각 시도에 공문을 보내 관광
안내 표지판에 한자를 병기하도록 했지요. 그래서 해당지역 시도별로 관광
안내 표지판 몇 개에 한글과 한자, 영어를 병기하게 된 겁니다."
그러면 앞으로 모든 도로 표지판에도 한자를 병기할 수 있게 된 것일까. 하
지만 돌아온 대답은 관광안내용 표지판에만 해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기타 간판은 건설과에서 담당한다는 것이다. 건설과에서는 도로 표
지판에 한글과 영어만 사용토록 되어 있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독립기념관 입구를 들어서는데 "류관순 열사 사우, RUYKWAN-SUN MEM
ORIAL SHRINE"라는 안내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한자를 모르는 한글세대가
이 표지판을 본다면 "류관순 열사는 누구의 회사 친구일까?"하고 고개를 갸
웃할 것이다.
柳寬順 烈士 祠宇 라고 표시한다고 해서 예산이 더 드는 것도 아닌데 영어
를 쓰는 것은 사대주의가 아니고 한자를 쓰는 것은 사대주의라는 발상은 어
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진천군에서 보았던 국한문 혼용의 갈색 표지판은 온양시 입구와 아산시 입
구에서 두 개를 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水原城(수원성) 같은 유적지에
는 국한문을 혼용한 표지판을 볼 수 없었다. 경기도청 관광과에 전화를 해
보니 아주 편리한 대답이 돌아왔다. 관광지와 문화유적지는 그 의미가 다르
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인들을 위시한 동남아 관광객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이유로
마지못해 관광지만은 한자병용 표지판을 허락한 것이다. 수려한 풍광을 즐
기기 위해 관광지를 찾는 사람들과, 한 나라의 역사나 문화를 이해하기 위
해 문화유적이나 역사유적을 찾는 사람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간판에서 한글전용의 폐해가 이 정도의 혼란을 야기한다면 신문에서 어떤
상태일지 살펴보자. 신문 중에는 특히 스포츠 신문의 한글 표기가 가장 많
으며 그 폐해도 심각하다.
웅담포, 주간방담, 수상학, 포수, 무턱 교정술, 단승식 고액배당, 출주마 각
질, 백구스타, 다낭성 난소증후군, 주전 야수 늙은 사자, 간자를 배웁시다,
어신, 사시 근시, 공수주 완벽.
수상학은 首相學인지 手相學인지, 포수는 捕手인지 砲手인지, 무턱교정술
은 무턱대고 무엇을 바로잡는다는 뜻인지 아니면 턱이 작은 사람을 위해 고
쳐준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백구스타는 白鷗스타인지 白球스타인지 알 수
없다. 주전 야수 늙은 사자라는 제목은 야구선수들을 사나운 走戰野獸 늙은
獅子로 만들어버렸다.
신문이 한자를 배격하고 반드시 한자로 표기해야 할 어휘마저 한글로만 보
도한다는 것은 지독한 자기중심적 사고이며, 公器(공기)로서의 기능을 잊은
것이 아닐까.
한자 회피 증세는 비단 언론뿐만이 아니고 출판물에까지 폭넓게 번져 있다
현재 국내에서 발행하고 있는 잡지나 출판물 중 일부 학회지나 특수 학술서
적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하나같이 한글전용, 한자 회피에 몰입되어 있다.
심지어 필자들이 한자가 섞인 원고를 출판사에 들고 가면 아예 출판을 포
기해야 할 정도로 우리나라 출판 현실은 답답하고 암울하기까지 하다. 한자
가 근간이 되는 東洋古典(동양고전)관련 출판물조차 한자를 아예 빼버리거
나 첫 번째 등장하는 지명이나 인명에만 마지못해 괄호안에 한자 토를 달아
줄 뿐 반복되는 지명과 인명에는 아예 한자를 배제하는 얄팍한 편법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출판인들은 한자가 속독률을 떨어뜨려 독자들이 기피한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운다. 일면 타당성이 있는 주장 같기도 하지만 현명한 正道(정도)는 아
닐 것이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李應百(이응백)박사는 이 같은 출판문화의
왜곡된 풍토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책이라는 것은 한 번 보고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거기에 어려운 용
어나 이해하기 힘든 낱말이 있더라도 한번 두번 반복해 읽는 동안 때로는
사전도 찾아보고 스스로 생각도 하며 책을 읽는 것이 진정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인 것입니다. 지나치게 세세한 부분까지 풀이한 책은 읽는 사람이 그
책의 깊이, 또는 진리에 다가설 수 있는 길을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생각하
지 않으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면 그것은 이미 책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독자에 따라 이렇게도 생각하고 저렇게도 생각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매번 다른 느낌을 가
질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 할 것입니다"
결국 언론과 출판이 앞장서서 한자 사용을 기피하는 것은 스스로의 발에
족쇄를 채우는 것과 같다. 읽기 쉬운 한글문장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점점
문자매체를 멀리하게 될 것이고, 일반 대중에게 접근하는 데 있어서 문자
매체는 결코 전파매체의 경쟁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